오래전 도제시절과 기타제작가의 삶을 주제로 쓴 이야기 입니다 

제작입문​

누구나 처음 접했던 것은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처음 도제생활을 했던 기억은 지울 수가 없다 지금도 한날 한날이 생생이 기억이 나는건 그토록 갈망하던 것을 찾았기 때문이리라

 

2003년 3월 의정부 모공방에서 후계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보자마자 흥분된 목소리로 연락을 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후계자 광고를 보기 몇년전부터 제작을 배우고 싶어서 배울수 있는 곳을 수시로 알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군데 전화도 메일도 보내봤지만 도제로 들어가서 배우고 싶어하는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었다

흥분과 설레임으로 연락을 하였는데 한번 와보라는 소리가 천상의 소리와도 같게 들렸던거 같다

 

전철에서 내려 그 곳까지 걸어가는데 떨리는 발걸음으로 올라올라서 갔다

집과 공방이 같이 있는 허름한 옜날집이였는데 주변에 기타자재들이 널려 있었고 목공 기계들과 나무를 다루는 공구들이 많이 있는 주 작업실을 보는 순간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곳이 펼쳐졌다 

나무 작업대, 대패, 끌, 톱, 제작되어지고 있는 기타들..

바로 이런 공간이었다 내가 정말로 원하던 곳 ! 나무냄새와 너무도 익숙한 기타들 

지금도 그 때의 그 냄새를 잊지 못한다

 

여기 후계자를 구하고 있다는 말과 나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었고 난 무조건 네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라는 말만 했었던거 같다 그만큼 절실히 원했기 때문에

 

공방옆에 누워서 발을 뻗으면 끝이 닿을것 같은 작은 방을 내주었는데 난 그 공간도 너무도 좋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12시까지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데 그 시간 속에서 도제생활이 시작 되었다

식사도 같이 하였기 때문에 거의 생활을 같이 했다고 보면 맞다

도제 첫날과 긴장과 설레임

 

2003년 3월 초봄

드디어 그토록 원했던 제작을 배운다는 생각에 전날 잠을 한숨도 못잤다

그래도 젊어서 그런가 하나도 피곤하지고 않고 오히려 더 생생해지고 눈은 빛이 났던거 같다

청소와 주변정리는 당연히 나의 몫이 되었고  잠시도 쉬지 않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열심히

 

나의 첫날은 작업실에서 제작 되어지고 있던 기타가 약 30대정도 있었는데 바인딩(기타몸통테두리)작업을 할 차례였다

작업실에는 나를 포함 3명(선생님, 사모님, 나)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바인딩 시범을 보여주시고 해 봐 ~

무조건 해야 했기에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한시간 즈음 지났을까 요령이 생겨 속도가 붙기 시작했는데 선생님께서 대뜸 초보가 아닌거 같은데 어디서 하다 왔어 물어서 칭찬인줄 알고 기분이 좋아 여기가 처음이예요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거짓말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계속 그러기에 .. 엉?? 이거 칭찬이 아니잖아 속으로 생각했고 정말로 말하시는 것 같아 여기가 정말 처음 이라고 말을 했지만 믿지 않으셨던 거 같다 아마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실거라 생각한다  정말로 처음이였는데 ..

시간이 몇시간 흐르니 긴장은 없어지고 바인딩 작업에 푹빠져 재밋어지고 작업과 내 몸이 한 몸이 된 거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선생님은 잘하내 그러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다음 작업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무조건 해보라고 시키셨다  루타작업, 지판스케일 내는 작업, 삼축벨트작업, 센딩, 수빼빠등 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작업을 시키셨는데 한두대 버릴 샘치고 시키는 거라고 하셨다

그 때는 처음이라 원래 이렇게 배우고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 했었지만 오랜시간이 지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누구를 가르키시는 것에 대해서는 귀재셨던거 같다

난 그토록 갈망을 했던 것이기에 하얀 백지가 먹물을 빨아드리 듯이 습득해 나갔다

한 공정을 수십번 반복하기에 숙련도 되가고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작업실 옆에 내어주신 작은 방에 들어와서 오늘 작업하였던 걸 머리속에 새기며 생각하다 보면 잠들기 전까지 온통 기타생각뿐이였고 생각하다가 잠이 들곤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작업은 어떤 작업일까 궁금과 설레임의 연속이였고 제작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신께 감사했다  부디 계속 제작을 하게 해주세요 이것을 저에게 빼앗지 말아주세요라고 기도도 했다

2003년 초봄

환절기라 주변에 감기가 걸린 사람들이 많았었고 사모님도 감기에 걸렸었고 나 또한 감기에 걸려 좀 고생을 했다

하지만 조금도 티를 내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히 도제생활을 이어갔다

지금이라면 병원에 가거나 약을먹고 쉬었을텐데 그 때는 좀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생각을 했었던거 같다

 

며칠이 지나 감기가 절정에 달아 오늘은 버티기가 힘들거 같아서 선생님께 말을 하고 하루 쉴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사모님이 감기에 걸리신 몸으로 작업실에 나오셨는데 선생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사모님에게 하셔서 나의 머릿속이 온통 복잡해 졌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병원에 대리고 가시거나 약을 사왔을텐데 ..

지금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던거 같다

선생님이 그 때 사모님에게 하셨던 말은 여기서 할 수는 없지만 좀 심한 건 사실이었고 그래서 나는 선생님에게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면 어떻게 될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정리 되지 않는 복잡한 생각과 아픈 몸을 정신력으로 그렇게 버텨갔다

그 날 밤은 정말 힘들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한다 밤 새 끙끙 앓았고 식은땀에 이불이 흥건이 젖을 정도였으니깐

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며칠내내 선생님께서 하신 말은 지워지지 않았고 머릿속에 혼돈까지 오게 되었다

도제생활은 계속되었고 나의 기타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한가지 한가지씩 빠르게 습득해 갔다

 

그 당시 난 인터넷 활용를 했었기에 일과가 끝나면 피시방에가서 선생님을 위해 다음카페를 개설하고 낮에는 도제생활을 밤에는 선생님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회원수도 늘고 반응도 좋아지기 시작하니 선생님께서도 무척이나 좋아 하셨었고 선생님께서도 인터넷활용을 하시면서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다른 카페도 소개를 해 그 곳에서도 활동을 하시며 재미를 붙이시는 듯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재능을 인정하셨고 가지고 계신 노하우도 몇 가지 말씀해 주셨는데 나의 기타제작에 적용하곤 있지는 않지만 기억은 하고 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 첫 월급 60만원을 받았다

배우면서 받은 돈이라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나에겐 의미가 컷고 소중히 여겼다

매일 매일 바쁜 하루였지만 한 달이 지난 후에는 주말에 선생님과 낚시도 다니고 조금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고 진행하고 있던 기타들이 완성이 되어 기타 배달도 같이 다녔는데 선생님께서 주문한 학원선생님에게 90도로 인사 할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한 달하고 10일쯤 지났을 무렵 난 많은 고민과 혼돈에 휩싸이게 되었다

“여기서 그 때의 일들 중 좋은 이야기만 써야 되는지 아니면 안 좋은 이야기도 써야 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쓰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유는 여기서의 있었던 일이 컷 던 만큼 후회도 많이하고 단단해지기도 하여 후에 다른 곳에서의 도제생활을 하면서 1년이 넘도록 돈을 받지 못하여 라면을 끓여 먹을 돈도 없을 때 견디는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택

 

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어떻게 해야 나의 제작인생을 걷는데 옳은 결정인지 생각의 끝에서 괴로움의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그만 두기로..

만약 지금이라면 절대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 때 당시에는 작은 생각에 어리석고 후회가 될 선택을 하였던 거 같다

선생님은 나를 아끼셨고 재능도 인정해 주시며 그만두겠다고 하였을 때 내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가르켰고 거처간 사람들이 많은데 단 한번도 붙잡은 적이 없다. 근데 너 만큼은 붙잡고 싶다 몇 개월만 참으면 월급도 많이 줄 테니 가지말고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죄송해요 선생님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짐을 챙겨 후회가 될 발걸음을 하고야 말았다

정말 그토록 원하고 갈망했던 것인데 ..

내가 그만두기로 결정한 이유는 제작문제 때문에 그런건 아니며 이 분을 나의 제작인생 프로필에 올리기 싫어서였다

오로지 제작만 보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완벽하지 않고 모순덩어리인 인간을 보았기 때문에 존경심이 사라졌고 이 분을 스승으로 모시기에는 나의 작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에겐 제작가의 환상이 있었고 남다르고 고귀하며 존경스럽고 함부로 대하지 못할 존재로 생각을 하였는데 그런 존엄한 존재를 산산히 무너뜨렸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 있는게 싫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석고 어렸었던 거 같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사사로운 많은 일들이 있었고 평소에 말과 행동들은 정말 아니였는데 공방에 손님이 오면 자부심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고귀한 제작가로 변하는 모습에 난 인간의 이중성을 곁에서 보았고 그것을 그 때는 받아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제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면 스승을 찾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결정을 하며 결정을 하면 오직 기타만 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꿈을 위해 노력하여도 그 꿈을 이루도록 주변의 것들이 순탄하게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기타만 본다면 이 분은 실력 있는 제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기타도 훌륭하고 소리도 좋고 제작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오랫동안 제작에만 몰 두 하셨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분의 기타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한 달 반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 둘 때 보름치 월급을 계산해 주셨고 서로 아쉬움을 가지며 헤어지게 되었고 그 후 며칠을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다

그토록 갈망하던 곳을 그만두고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네가 만든 다음카페를 내게 양도하고 운영은 네가 하였으면 좋겠다고

난 순간 또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일과 끝나고 선생님을 위해서 만든카페이기에 그냥 바로 양도를 해주었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하루하루 희망이 없어지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그 탓이 다 선생님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냥 네 하고 바로 양도할께요라고 했어야 되는데 그만둔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양도 말씀을 하시니 기분이 좀 안좋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선생님께서 관리를 하실 수 있으실때 양도를 해드릴려고 했었어요

선생님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에 맘이 상하셨는지 전화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순간 내가 잘못 하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며칠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기 의정부경찰서인데요 고발건이 들어와서 전화를 하였습니다  출석을 한번 하셔야 될 거 같습니다

네? 경찰서요? 무슨일인데 제가 고발을 당해요?

첩자로 고발이 접수되었습니다

네? 첩자요? 무 무슨 첩자요?? 제가 왜 첩자로 고발을 당했나요?

기술을 빼내려고 들어온 첩자로 고발이 되었네요?

네네??

 

그렇게 너무도 황당한 전화를 받고 내가 첩자가 되다니 생각하니 무엇으로도 형영 할 수없는 비참하고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카페를 바로 양도 안해주었다고 첩자로 오인하고 고발까지 하시다니

 

그렇게 해서 경찰서로 불려가 고발 접수장을 보았는데 다른 공방에서 자기 제작기술을 빼낼려고 보낸 스파이로 매도 되어 있었다

내 인생이 추락하는 걸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서 책상에 업드려 어떻게 이런일이 어떻게 이런일이라고 혼자 말을 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몰랐다

고발되었을 때가 그 곳을 그만 두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니 2003년 5월초? 즈음 되었던거 같다

 

그 후 내가 활동하고 있었던 다음 카페가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강퇴가 되어있었다 그 당시 특별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고 강퇴라니

이유를 몰라서 카페주인에게 전화를 해 제가 왜 강퇴가 되었는지 알고 싶다고 하니 자기도 모르는 일인데 알아보겠다고 하였고 조금후 연락이와서 알고보니 운영진이 강퇴를 하였는데 이유는 선생님께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해서 나를 아주 나쁜사람으로 매도를 하였고 그 말에 공감한 운영진은 가차없이 강퇴를 시켰었던 것이었다 

 

난 너무도 기분이 안좋아 그 분을 인터넷상에 좋은 사람이 아닌거 같다라는 비슷한 글을 썼는데 명예회손으로도 고발이 되었다    

 

난 내가 갈기갈기 찟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기타제작가가 되고자 했었던 마음은 사라져 버렸고 그토록 좋아했던 기타도 보기 싫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첩자로는 혐의가 인정되지 않고 명예회손으로 인정이 되어 벌금을 물었다

그 때 두 명 이상이 있을때 모욕을 주거나 욕을 하여도 명예회손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건의 발단이 바로 카페를 양도하였더라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순간 실수가 이렇게 커질 수도 있구나라고 호된 인생을 배우게 되었다

그분과의 만남 

(여기서 나오는 그분은 나중에 기타제작과 수리등을 가르켜주신분을 말합니다)

(그분께서 실명을 쓰는걸 원치 않으셔서 그분으로 호칭합니다 이유는 나중에 나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방황을 하며 지냈는데 길거리를 많이 걸어 다녔던 것으로 기억 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다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서점과 앨범가게등 음악이 있는 곳으로 주로 배회를 했던 거 같다

 

 

 

 

그렇게 지내고 있던 어느 날 번개 빛처럼 *** 이란 이름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왜 그 때 그 이름이 생각이 났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이름을 검색을 하기 시작했는데 새벽에만 만날 수 있는 분, 수리실력이 국내 최고이신 분, 외국명기수리를 가장 많이 하신분, 그 분 손을 거치면 안 좋았던 기타도 명기급으로 완성된다는 이야기, 항상 바쁘시고 보기 쉽지 않은 분, 최고의 실력자라는 칭호가 붙어 계신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내 속에 숨어있던 제작가의 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름있는 분들은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왜 몰랐는지 그렇게 유명하신 분 이신데

 

 

 

 

한번 쓴 맛을 본 터라 많이 망설이다가 그래 바쁘시고 유명하신 분인데 되겠어? 기대하지 말고 문자로 보내보자

제작가가 되고 싶은 갈망을 문자로 보내고 답장이 오리란 기대는 정말 하지 않았다

왜냐면 예전에도 국내에서 가장 이름 있는 분들에게 전화도 해보고 메일도 보내보고 했었는데 다 안되었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고 나서 전화벨이 울렸는데 놀랍게도 그분께서 문자도 아니고 전화를 나에게 했던 것이다 순간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너무도 기대를 안해서 그런가 통화버튼을 눌러야 되는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계속 벨이 울리고 통화버튼 앞에 있는 손가락이 떨다가 눌러져 버렸는데 숨이 먿는 줄 알았다

 

 

 

 

“여보세요”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10분넘게 통화를 했던거 같다

 

난 제작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이야기했고 그분께서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야기중에서 가장 큰 포인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가르켰는데 배신을 많이 당했던 이야기와 “내가 지금 누구를 가르킬 입장이 못되나 실력있는 제작가를 소개를 해주겠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전화를 해 놓을 테니 연락을 해보라고 하시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다

 

전화를 끊고나서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새벽에만 보실수 있는 분과 통화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소개까지 해주시다니

먼가에 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전화한통이 방황하던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분께서 소개를 해주신 분과 통화를 하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많은 생각이 교차 되었는데 한가지 다짐을 한건 나에게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전처럼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 나도 단점이 많은 인간이다 그분이 잘났건 못났건 오직 기타만 보자

오직 기타만 보자 오직 기타만 보자 말을 되새기며 세뇌가 되도록 계속 주입시겼다

 

 

 

 

당시 난 건대입구역근처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고시원을 나와 전철을 타고 만나기로 약속한 공방으로 향했다

 

 

 

 

전철 안에서 이름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본명이 이정현 한자로 정사정(政)에 빛날현(炫) 아무리 생각해도 기타제작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을 하였고 다른 어울리는 이름으로 바꿀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름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내리게 될 전철역에 도착하고 전철역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공방으로 향했다

대뜸 택시기시가 그 동내에는 무슨일로 가냐 물어서 네 일이 있어서요라고 간단히 대답을 하였는데 그 동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다가 순간 아저씨 빠꾸라고 말할 뻔 했다

 

택시기사는 내가 가는곳이 옜날에 문둥병환자들이 살았던 곳이고 지금도 많지는 않지만 살고 있다고 말을 하였고 그런곳에 왜 가냐고 찝찝해서 자기는 안 간다고 말을 하였다

 

 

 

 

문둥병환자들과 우리 집안과는 안 좋은 사연이 있는데 사연을 말하면 증조할아버지께서 일제강점기때 병원을 하셨고 그때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고 계셨는데 어느날 환자가 와서 진찰해보니 문둥병환자 였다

할아버지는 보호자인 환자 아내에게 남편이 문둥병이라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환자는 아내에게 문둥병이란 이야기를 하였다고 흉기를 들고와서 할아버지에게 몹쓸짓을 하여 돌아가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이 있은후로 우리집안은 문둥병환자들을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난 순간 갈등을 하였다

 

 

 

가야되는 것인가 말아야 되는 것인가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을 느꼈지만 그냥 가기로 결정하여 약속한 공방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서 내려 공방까지 걸어가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나환자촌으로 들어왔다니 우리 집안과는 좋지 않은 곳인데 왜 하필 여기서 공방을 할까? 혹 그분도 문둥병환자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약속한 장소에 다다르니 마르고 키가 좀 큰 분이 마중 나왔다 그분이 선생님인줄 알고 인사를 했는데 선생님은 아니고 제작을 배우고 있는 분이였다

친절하게 공방까지 안내를 받고 들어갔는데 공방이라고 말하기는 머 할 정도로 제법규모가 좀 컷다 주로 보급형을 위주로 제작을 하는 곳 이였는데 준공장 분위기여서 기대와는 사뭇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

기타만을 보다

앞으로는 사람을 보지않고 오직 기타만을 보며 전진하리라 다짐하며 두번째 도제생활이 시작 되었다

 

마르고 키가 크신분의 안내로 공방에 들어섰는데 생각과는 다른 공방분위기가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옜날벽돌(보루꾸)건물에 큰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옜날기타공장과 같은 목공기계가 어서와 하는 것처럼 날 맞이했고 몇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공방과도 같은 주 작업실이 펼쳐졌다 

앞으로 내가 스승으로 모실 분이 계셨고 반갑게 날 맞아주어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름이 머지?

'순간 머리속에서 맴돌던 이름이 나와 버렸다'

이운선입니다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내 인생의 2막을 알리는 이름이 정해지고 말았다, 나중에 한자어도 나무무늬 운 아름다운 선으로 지었다'

형(그분)에게 이야기는 들었는데 한번 해보겠어?

간절한 맘으로 네 정말 꼭 해보고 싶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돈은 3개월후터 조금씩 챙겨줄테니까 한번 해봐

네 알겠습니다 언제부터 할 수 있나요?

어 내일 9시까지 나와

네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가슴벅찬 맘으로 그 곳을 나온후 살고 있던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입사시험에서 합격을 받고 첫 출근 날짜를 받은 기분이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더이상 갈 곳도 없다 

그분께서 소개를 해주신 곳이고 내일 출근은 하면 그 곳에서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 꼭꼭 붙어 있으리

 

고시원에 오자마자 짐을 챙겨 그 곳과 가까운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출퇴근용으로 저전거도 중고로 한대 장만 하였다 

수중에 돈이 넉넉치 않아서 3개월까진 수입이 없을테니 교통비도 아껴야 될 상황이 되었기 때문

예전에는 첫달에 60만원을 주었는데 여기서는 3개월 후 부터 조금씩 챙겨준다는 말에 조금 그랬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라는 심정으로 

 

 

첫출근

약간의 흥분과 설래임으로 첫 출근을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한 3일은 그냥 지켜보라고 하셔서 3일간 서서 있었는데 먼가 하지도 않고 그냥 일하는걸 지켜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리도 더 아픈거 같았고 

그렇게 3일이 지난 후 조금씩 청소도 하고 시키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처음 날 가르키신 분은 날 공방으로 안내를 하였던 키가크신 분인데 여기서 있게된 사연이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자체 브랜드도 있었지만 판매가 되는 건 아주 적었고 주문이 많은 다른 제작가분의 하청을 받아 제작하는 게 거의 90프로 

키가크신 선배님은 하청을 주는 분의 후계자였다

아마도 여기서 악기가 나오니 제작도 도와주고 숙련도 시키고 그런 의미에서 있었던거 같다

선배님은 내가 들어가고 나서 3개월 후에 본 공방으로 복귀했는데 3개월 동안 정말 나에게 친절하게 잘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곤 한다

 

그렇게 선배님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선생님과 나 둘이서 제작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독일식제작방식으로 제작을 하였는데 한달에 보통 30대씩 제작이 되었고 주로 보급형 위주로 제작을 하였다 고급도 하긴 하였는데 많지는 않았다 

청소와 정리정돈은 당연히 내 몫이 되었고 많은걸 하고 싶었지만 선생님께서는 부분적으로 조금씩 가르켜 주시고 그 것만 하게 하였다 

 

몇개월이 지나 난 단순작업만 계속해서 하는게 너무 더디다고 생각하였지만 선생님은 계속해서 악기가 나와야 되는 상황이어서 내가 그 작업을 하는게 도움이 되고 다른 작업을 맞기기에는 아직 때가 안되었다고 생각을 하셨던거 같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피어리나 배윤수제작가님이 예전에 제작을 처음 배울때 어느 공방에 있을때였다 6개월동안 사포작업만 시키고 다른 작업은 안시키고 해서 나중에 그분께서 개인레슨을 해주었다고 

이 이야기는 그분께서 후에 해주신 이야기이다

아마도 지금 나의 마음이 배윤수제작가님과도 같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 5개월쯤 지나 선생님의 소개로 거처를 고시원에서 공방에서 걸어서 5분도 안되는 아주 싼 월11만원짜리 원룸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고시원비가 부담이 된것도 있고 일과 시간이 끝난 후 공방에서 나 혼자 작업을 하는걸 허락하셔서 혼자 숙련을 하는데 좋을거 같아서였다

일과시간동안 나에게 주어진 작업만 하기엔 더디다고 생각하여 선생님께서 퇴근을 하면 공방에서 밤 늦게까지 다른 작업들을 하곤 했는데 주로 선생님께서 작업하셨던 것을 혼자서 해보고 반복해서 연습을 하였다

판단과 행동

나의 도제생활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선생님을 도와 제작하고 청소와 정리정돈 그리고 밤에는 나에게 맞기지 않는 작업들 선생님이 하셨던 작업을 혼자 하나씩 해보고 숙련을 하며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3개월 4개월 5개월이 지나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작에 대한 갈망은 더욱더 많아 졌지만 한가지 고민에 휩사이게 되었다

그건 선생님께서 3개월이 지나서 조금씩 돈을 주시기로 하셨는데 5개월이 지나서도 한푼도 주지 않아서 였다

 

내가 일하는게 선생님은 마음에 안드시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마음에 안드는데 나가라고 하기는 머하니깐 알아서 나가라고 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일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도제라고 하면 배우는 제자가 최소한의 생활은 하게끔 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다만 몇십만원이라도 지원해줘야 버틸수 있는데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니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먼저 말꺼내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여기가 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여기서 나가면 갈곳도 없었고 그래서 혹시 말꺼내다가 잘못되면 나가라고 할까봐 혼자 고민만 

오직 기타만 보자고 다른건 보지 말자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들어 온건데 신은 날 또 시험대에 올려 놓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내 모든걸 던져 오직 기타만 보고 있는 것일까?

 

많은 생각끝에 내가 여기서 좀 더 최선을 다하는게 어떤 것일까 생각하고 판단을 하였다 

나의 판단은 선생님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제자가 되고 선생님에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행동에 옮기는 것이였다 

나의 프로필에 올라가실 분이니깐 선생님부터 성공을 해야 나도 좋을거 같고

그렇게 되서 선생님의 이름이 많이 알려지게 되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선생님도 사람인데 그냥 날 내버려 두지는 않으실거란 판단이 섰다  그래 선생님은 지금 경제적으로 힘드시기 때문에 약간의 돈도 못주시는 걸거야 하고 위안을 삼았다

 

선생님은 본인 기타브랜드는 있었지만 당시 거의 하청을 받아서 제작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먼가 이슈가 필요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먼가가 없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어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다보니 떠올랐다 그래 이거면 사람들이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계획을 짰다

 

홈페이지가 없으니 먼저 카페를 개설하여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

카페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자료를 올리는 것

온라인 홍보를 하여 기타에 관해 조금만 검색해도 선생님 카페로 올 수 있도록 하는 것

학원선생님들에게 기타를 홍보 하는 것

선생님 기타를 홍보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참석하여 홍보에 집중하는 것

 

이렇게 계획을 짜고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여 행동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해보자  어짜피 여기가 아니면 더이상 갈 곳도 없지 않은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선생님에게 네이버 아이디를 건네 받아 카페를 개설하고 꾸미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카페구도가 잡힌후 기본적인 자료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슈가 될 자료가 필요했다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많은걸 얻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유튜브가 없었고 검색을 하여도 잘 볼 수 없는것

그것은 기타제작공방에서 이루어지는 생생한 제작동영상이였다 

설정과 가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생생한 제작 동영상 이거면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거 같았다

 

하루하루 제작하시는 모습을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여 동영상도 올리고 기타사진도 촬영해 올리고 실력있는 선생님을 온라인에 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예상대로 반응이 좋았다 

학원선생님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선생님의 기타를 들고 방문하여 소개를 하였다

온라인 홍보보다 학원선생님들에게 선생님의 기타를 소개하는게 사실 제일 힘들었다

한번 나가고 나면 녹초가 되어서 돌아오곤 했으니깐

 

노력하면 반드시 댓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온다고 했던가 

 

카페가 활성화 되면서 주문이 이어지기 시작하고 학원에서도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작은 승용차가 한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큰 새차를 구입하고 경리까지 두실려고 하였다

난 선생님에게 아직 시작단계이고 몇년은 이대로 쭉 이어 나간 뒤 나중에 정말 바빠지게 되면 그때 경리를 두는걸 권해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영호

글을 쓸려고 하니 천둥이 칩니다 마치 영호가 자기를 이야기 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도제생활을 하던중 한 반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인 거 같습니다

제가 처음 기타제작을 시작 했을 무렵 영호는 기타제작을 배우러 일본에 건너가 니보리예술학교에서 제작수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지금은 제작과가 없어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조영호가 클래식기타제작가로서는 첫 유학파겠네요

 

카페가 활성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길 보고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공방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였죠

선생님은 다음날 와보라고 하고 영호와 약속을 잡았습니다

 

영호는 일본에서 제작수업을 받으며 제작한 몇대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자기 꿈을 펼치기에는 숙련이 부족함을 알고 도제로 들어가서 숙련과 경력을 쌓기위해 문을 두드린것으로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수락을 하셨고 전 갑자기 후배가 생겨서 아 이제 청소에서 벗어 나는 것인가라고 내심 좋았었죠 

나이는 저랑 비슷했고 키가 좀 작고 학구파같은 두꺼운 안경에 똑똑하게 생긴 외모 그는 말수가 적었고 조용히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

 

첫 출근을 하였을때 난 영호에게 선배로써 공방 돌아가는 것을 설명한 뒤에 자재를 쌓는 것 시범을 보여주고 자 잘 봤지? 이렇게 쭉 쌓아놔  영호는 네 선배님하고 짧게 말하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난 주작업실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고 한두시간쯤 지났을까? 다 쌓았다고 말을 해서 나가서 확인해보니 쌓긴 쌓았는데 반듯하지 않고 맘에 들게 하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쌓으라고 했어? 시범까지 보여주었는데 이게 머냐

자재가 잘 건조되게 하나씩 사이띄기를 하는 것이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찌 몰라도 일률적으로 쌓다보면 눈의 균형감각도 길러지기 때문에 제작에 도움이 되니 신경써서 다시해라고 말하고 난 작업실로 들어갔습니다

 

몇시간이 지난 후 영호는 분위기 파악이 되었는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로 잰듯 쌓았고 주변 청소까지 말끔하게 정리해서 깜짝 놀랐는데 짜식 보통이 아니잖아라고 속으로 생각 했었죠 

 

그렇게 영호와 나는 도제생활을 함께 했고 수개월이 또 흘러갔을 무렵 우리는 일과 시간이 끝난 후 새벽 2시 3시까지 잠을 잊은체 기타제작에 미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영호는 나와 경쟁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와 경쟁을 하는 것인지 항상 나보다 늦게까지 남아서 숙련을 하였고 난 속으로 저놈은 정말 미친놈이다라고 속으로 말을 하곤 하였죠

 

겨울이 오고 매서운 추위가 있을무렵 영호가 있는 곳이 궁금해 졌는데 왜냐면 난 11만원짜리 작은 방에서 생활하였고 영호는 10만원짜리 방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 생활하는지 궁금도 하고 저녁은 어떻게 먹는지도 궁금하여 방문을 하였습니다 

역시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얼어버린 찬 밥에 라면과 신김치가 전부인 것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는데 나도 별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그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라는게 맘이 아팠다 

 

기타가 머길래 이런 생활을 감수게 하는 것인가 기타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처럼 한번 맛을 보면 헤어나게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영호는 내가 그 곳을 나온뒤로 6개월정도 더 있다가 그만두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였고 잠도 하루 3~4시간 밖에 안자고 매진하였건만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꺼냐하고 물으니 여기서 책임자격으로 계속 있기를 바라는 맘을 비쳤는데 선생님께서 앞으로 잘 챙겨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맘을 잡았던 거 같다 

영호에게 매달 얼마씩 선생님이 주는가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난 그에게 선택은 니가 하는 것이지만 선생님은 널 니가 생각하는 것 처럼 챙겨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진심어린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조영호는 기타를 제작할 줄 아는 상태에서 들어 왔기 때문에 거기에 숙련까지 더해져서 한 공정마다 전문가가 되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냥 나가서 공방을 오픈하면 되는 실력을 갖추어져 있었는데 영호의 선택은 남아 있기로 결정 한 듯 했다

 

수개월이 흘러서 영호는 선생님에게 도덕적으로 이러실 수 있습니까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그 한마디 때문에 선생님에게 밉보여 결국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영호도 거기에 약 2년간 있었기 때문에 공정마다 어느정도 숙련이 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전판이면 전판 후판이면 후판 제작하면 개당 얼마씩 쳐서 줄께라고 하였고 그 말을 들은 영호는 거기에 매진하였지만 선생님은 감당을 하지 못하였는지 월급제로 바꾸어야 겠다라고 영호에게 다시 말을 하였습니다 

 

거기에 대한 댓가는 지불하고 말을 번복하였다면 좀 나았을텐데 영호에게는 상처가 되었었던 거 같았다

 

말은 참 무서운거 같습니다 

내가 아는 영호는 우리나라 제작에 관해 첫 유학파고 말도 적고 실력도 있으면서 열심히 일만 하는 실력있는 제작가가 될 제목이었는데 그렇게 맘에 상처만 남긴채 포기해버리고 말다니 

.

.

 

그 후 선생님은 영호에 대해 주변분들이 물으면 안좋게 이야기를 하셨는데 진실은 그게 아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배우는 사람도 희생이 필요하고 가르키는 스승도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전한 제작가가 탄생되기까지는 서로 많은 피를 흘려야 된다라고 

 

제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방의 문을 두드리지만 거기서 독립하여 공방을 차리는 경우가 드문 이유가 그 것일 것이다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는 모든게 새롭고 좋겠지만 크고 안크고는 가르키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다는 것이다   

 

오늘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안타까운 제작가의 이야기를 함으로 인해 오래전 실력있는 조영호라는 제작가가 있었다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연명과 동아줄 

그분 소개로 들어와서 일을한지 1년쯤 지났을까 돈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고 낮에 주는 한끼로 버텨보다가 배가 고파서 공방 뒤에 있는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어먹기도 할 때 내 자신이 비애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선생님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담달이면 조금이라도 챙겨주겠지 다음달 다음달...... 

 

선생님과 나는 매일 바쁘게 일을 하였고 영호도 쉬지 않고 일을 하여서 수입이 좀 나아졌다고 생각하였지만 1년이 넘도록 야속하게도 조금도 돈은 주지 않으셨다 아마도 영호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찮가지 였을거라 짐작한다

 

선생님 요즘 제가 경제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3개월 후부터 주신다고 하던 월급이 1년이 넘었어요라고 목구멍까지 말이 나올때도 있었지만 하지는 못했다 

 

처음 도제생활 할 때에는 잠깐이였지만 첫달부터 60만원을 주고 칠을 제외한 많은 제작공정을 수십번씩 해보라고 시키셨던 그 분이 생각나기도 할 때도 있었다

여기서는 돈도 그렇지만 제작부분도 예전 그분에 비하면 가르키는 것도 너무도 인색했다

 

지금 나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선생님은 제작기술이 본인에겐 너무도 큰 것이여서 하나 하나가르켜 줄 때마다 자기살점을 주는것과 같은 심정이 아니였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아니면 그렇게 가르키는것에 대해 인색할 수가 없을것이다

 

1년이 지나니 기타제작에 대한 갈망과 내 스스로의 자존감이 날 버티게 하였지만 그 외의 부분들이 힘들게 하여 하루하루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가기 시작했다

오직 기타만 보리라  단점 투성이인 사람을 보며 다시는 실망을 하지 않겠다

그런 다짐을 하고 내 스스로 당당하기 위해 선생님의 그런 단점들을 애써 무시하고 지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것 어쩔 수 없었다  

 

그 해 겨울은 정말 춥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일을 마치고 방에 들어와 차가운 방바닥에 이불을 돌돌말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여기가 한계인가  

내가 원하는 꿈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운명인가

슬픔이 한없이 밀려왔다

.

.

 

 

하루하루 포기해야 되나 말아야되나 생각하며 힘들게 지낼무렵 그 분이 오셨다

 

그분 께서는 1년 넘게 한푼도 받지 못한걸 아시고 며칠 후에 쌀과 김치와 돈을 조금 주셨는데 

선생님 왜 저에게 이런걸 ..

선생님은 내가 자네에게 이정도 못해주겠는가 하시며 내일부터 새벽에 배우러 오게

 

내일부터 새벽에 배우러 오게

내일부터 새벽에 배우러 오게

 

환청인가 

난 이소리가 정말 환청인가 싶었다

 

소개를 해준곳에서 고생만 하는 내가 안타까워서 였을까? 이유야 어떻든 나에겐 구원의 소리였다 그렇게 그분에게 배우고 싶어했지만 선생님이 상황이 안되어서 배우질 못했는데 배우러 나오라고 하였다

 

난 그날밤 설래여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분 공방까지는 약 1시간거리 새벽 2시쯤 출발하면 3시쯤 도착

많은 사람들이 꿈나라에 있을 시간에 선생님 께서는 나를 본격적으로 가르키기 시작했다

 

날이 새면 있던 공방에 출근하여 일을하고 잠깐 잠을 청한뒤에 선생님의 공방에 다니면서 스페인제작방식을 배우고 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공방을 다니면서 제작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때 어떻게 잠을 안자고 그렇게 배웠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먼가에 홀렸던거 같기도 하다

 

그분은 스페인제작방식과 칠을 다 가르키고 난 뒤에도 수리기술을 한동안 가르켜 주셨다

 

어떤날은 새벽에 공방에 도착하여 불이 꺼져있을때에는 그냥 돌아 올때도 몇 번 있었지만 그분께서도 많이 피곤하셨을거라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나의이름이 붙은 기타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분의 레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나의기타들이 완성이 되면서 그 뿌듯함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가 어려웠고 이제 먼가 이룬거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그 후 낮에는 있던 공방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나의 기타를 제작을 하였는데  스스로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기타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

.

시간이 지날 수록 난 실력이 늘기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새벽에 그 분 공방에 다니면서 배우는 것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셨는데 나중에는 조금 불편하셨던거 같기도 하다

 

카페도 운영이 잘 되어 주문도 계속 일어나고 있었던 상황인데 선생님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카페을 운영하고 싶어 하셔서 선생님 지금 잘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대로 몇 년간 이어가는게 좋을거 같아요 지금 다르게 바꾸는건 전 아닌거 같아요라고 몇 번 말씀을 드리곤 했다

왜냐면 선생님이 우뚝서 계셔야 내가 더욱더 당당해지고 나의 프로필에 올라가실 분이시데 잘되야 더불어 나도 좋을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카페 운영을 자기가 하고자 하시는 방향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하는 나에게 기분이 좀 상하셨는지 인상을 쓰셨다

순간 예전 생각이 났다 그 때도 카페양도 문제 때문에 그랬는데

난 주저없이 선생님 그러시면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할께요라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속으론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선생님은 카페를 원하시는 대로 운영을 하시면서 좋아하셨지만 난 힘들게 활성화 시킨 카페가 조금씩 추락하고 있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내것이 아니니

 

얼마후 선생님은 나에게 극단의 말씀을 하셨다

보급형할래 고급할래

네?

고급하고 싶죠 

그럼 나가

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보급형 할려면 여기서 10년은 있어야 되고 고급할려면 나가서 해라

네???

.

.

그렇게 여기서 약 2년간의 도제생활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사실 쫒겨난거나 마찬가지

 

당장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데 이제 어떻해야 되나 

.

도제의 끝과 새로운 시작

그렇게 2년간의 도제생활은 끝이 났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 돈은 없고 고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만의 작업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여서 답답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해서 누구에게 손을 벌릴 처지도 아니였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게 좋은 것인지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분께서는 그만둔 소식을 듣고 보급형을 한다고 했어야지 왜 고급한다고 해서 그렇게 됐냐고 나무래기도 하시며 그녀석도 처음에 일할때 80만원씩 받고 일을 하였는데 너에게 어떻게 돈을 주지않고 일을 시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해 주셨다 

 

얼마 후 주변에서 들리는 말에 다 가르켜 놨더니 싸가지 없게 나갔다느니 운선이는 처음부터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하기로 하였다느니 이상한 이야기들이 들려서 한동안 스스로 비애감에 젖어 있기도 하였다

그래도 난 제자로써 부끄럽지 않게 행동 하였다고 생각 하였는데 그 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 분이 그렇게 생각하건 말건 내 스스로 그 분을 스승으로 생각하고 약 2년간 그 분 밑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당당히 프로필에 올릴것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리라 다짐 하였다

 

그 후 10년 넘게 그 분과는 좋은 관계로 지냈는데 나중에 그 분은 운선이는 내 수제자이다라고 주변사람들에 말하기도 하며 어디를 가도 내 제자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며 자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았다

 

그 곳을 그만두고 얼마후 선생님은 카페운영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으셨는지 다시 운선이가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시기도 하시어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다시 맡아서 하기도 하였지만 이미 떠나간 회원들을 다시 오게 하는건 매우 힘든 일이였고 처음보다 몇 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고 앞으로의 내 일도 걱정이 되는 판에 같이 하기는 너무 벅차 얼마동안 하다가 힘드시더라도 선생님께서 하시는게 좋으실 거 같다라고 말씀 드리고 손을 떼었다

나중에 다른 분 들에게 맞기면서 운영을 하시기도 하였는데 예전 카페는 그만두고 지금은 선생님 색깔에 맞게 잘 운영하시는 듯 하다

  

선생님은 돈 문제만 아니면 괜찮은 분이셨는데 10년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여러가지 일들 중에 꼭 돈문제는 항상 있었다 그래도 난 항상 넘어가고 넘어가고 하여 그 분과 관계를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얼마전 말로하기 힘든 큰 실수를 하셔서 더이상 그 분을 보지는 않는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질투심에서 비롯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 밑에서 일하는 동안과 그 후 오랜동안 관계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좋은일 나쁜일등 

이제는 기억 저편으로 간직하며 그 분 이야기와 일들은 여기서 그만 쓰도록 하겠다

 

...............

 

 

새로운 시작

나만의 작업공간을 갖기를 바라였지만 당장 돈이 없던 나에겐 너무도 힘든 것이여서 고민고민 끝에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갔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시골에서 조그마한 교회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청렴하시며 주변분들에게 존경을 받으시며 어머니와 소소한 생활을 하고 계셨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같이 나도 목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셨지만 믿음이 없는 나는 밖으로만 돌았던거 같다

믿음이 확 생기면 좋으련만 지금도 믿음이 없다

 

어머니와 연락후 정말 오랜만에 집에를 갔다

정겨운 시골풍경 아담한 작은 교회와 예쁜정원 어려서 부터 교회에서 생활에서 그런지 익숙하고 모든게 정겹게 느껴지기만 했다  오래된 익숙한 풍경처럼

언제나 그렇듯이 반갑게 맞아주시며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상에 부모님과 식사를 하였다

나를 위해서 사랑이 담긴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구나라고 속으로 뭉클함이 느껴졌다

 

늦은 밤 어머니에게 그동안 생활을 이야기하고 지금 나의 상황과 작업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어머니는 따뜻한 말과 얼마 되지는 않지만 이걸로 작업공간을 마련하여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한번 시작해 보거라 그리고 주일에 교회에 꼭 다니면서 믿음생활을 잃지 말하고도 당부하셨다

 

다음날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 나는 기쁜마음과 힘찬 발걸음으로 번뜩이는 눈빛과 비장한 마음을 가지며 올라왔다

나의 공방을 갖게 되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파주에서 갈망하던 나의 공방을 갖게 되었다

이것저것 다 갖추기에는 부담이 되고 생활도 해야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수공구를 장만하고 작업실을 꾸미기 시작했는데 지금 부터가 정말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공간을 파티션을 나누고 작업대를 만들어 놓으니 제법 공방 분위기가 나는게 벌써부터 기타제작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

하나씩 장만하다보니 필요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고민하고 있던 중에 선생님께서 다 준비해서 시작하는 건 힘드니깐 스킬을 키우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 조언이 나에게는 정말 필요한 시기였다

반드시 꼭 필요한 것 하나씩만 구입하고 목공기계도 가장 싼걸로 한 두개만 구입 자재를 구입하는 건 한도 끝도 없어서 몇십벌만 구입하도록 하고 나머지 부족한 거는 그때 그때 형편에 맞게 사는 걸로 결정을 내렸다

공방이 갖추어 지고 이제 정말 시작이다

 

처음 공방을 차리면 누구나 다 경험을 하겠지만 주문이 있는것도 아니고 기타를 제작해 놓는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 때는 또 삼십대라 기타를 제작해서 기타를 소개하기 위해 학원이나 선생님들을 만나도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시하기 일 수 였다

어떤 학원선생님은 아애 대놓고 몇살이야? 하면서 기타는 보지도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때는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며칠동안 휴유증이 가기도 

기타를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나이와 경력이 많이 좌우되는 것을 깨닫고 기타를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는 일 

월세도 내야되고 전기세과 냉 난방비등 공방 운영비도 있어야 되고 밥도 먹을려면 어떤것이라도 해야만 했다

 

주변 제작가분들의 도움을 받다

그 때 일거리를 주기도 하며 도와 주신분들이 강수원선생님 이성국선생님 이성관선생님 곽웅수선생님 이상주선생님등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나이는 어렸지만 실력은 조금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주변 제작가 선생님들이 일거리를 주기 시작하였다  그 때 그분들의 도움이 아니였으면 아마도 어떻게 되었을 지 

수리면 수리 제작이면 제작 정말 잠을 줄여가면서 하루 하루 생활을 하였다

정말 열심히 하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는 

몇 개월이 지나자 수리를 맞기신 분들이 만족해 하시면서 조금 씩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1년정도 지나니 애호가분들과 학원선생님들이 조금씩 인정해 주기 시작 하면서 주문이 오기 시작 하였다

특히 수리를 많이 했는데 공방에는 항상 수리할 기타가 쌓여 있게 되었다 

명기급들 수리를 많이 하면서 그들의 제작기술을 엿보게 되었는데  그들의 악기에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공통점을 나의 악기에 적용을 하면서 안개와도 같았던 소리의 비밀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였다

 

목공과 칠 수리는 자신이 있었던 상태 였지만 소리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항상 막연한 생각으로 제작을 하곤 하였었다

여러가지 소리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 소리들을 팍팍 만들어 낼 수가 있을까

막연한 생각 가지고는 한도끝도 없는 소리의 세계였다

 

원달성

소리의 초점

밸런스

단단한 소리

부드러운 소리

펀치감 있는 소리 등등등

 

오랜 역사속에서 어마어마한 제작가들이 소리를 연구하며 찾았을 것이다

그 것을 짧은 인생에서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 혼자서 연구하며 발견 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것 일거라 생각한다

 

명기 수리를 하면서 처음에는 이리보고 저리봐도 머가 먼지 

다 비슷비슷한 구조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소리가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하였다

만약 몇대만 수리를 하였다면 아직도 소리의 세계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명기급 악기를 많이 하면서 그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어떤 부분에서 거의 같은 방식으로 제작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고나서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온 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내 악기에 그것을 완벽히 적용하기 까지는 몇 년이 흘렀는데 왜냐면 검증하고 또 검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했다

 

기타는 어느 한군데 소리에 영향을 안 받는 곳이 없다

어느 부분을 조금만 손을 대도 소리가 바뀌게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전판 측판 후판 네크 브릿지 칠등 모든게 영향을 받는다

 

실력이 조금 있는 제작가라면 어느정도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 악기에 그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을 지키면서 소리를 찾아가기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이런 소리가 나올 것이다라고 제작을 하면 거이 비슷하게 나오게 되었다

소리를 다루게 되면서 많은 희열을 느끼게 되었는데 왜 명기제작가들이 그들의 노하우를 후계자나 수제자에게만 전수를 하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소리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제작도 자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소리를 다루는 비밀을 알고 제작을 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리를 어느정도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조금씩 다듬어 가기 시작 하였다

내가 추구하는 소리에서 조금 더 조금 더 좋은 소리 

 

기타는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도 변하기 때문에 그 것까지 생각하면서 제작을 하여야 한다

계속 연주를 해 주었을때 어느정도 시점에서 확 와 닫는 소리를 나오 게 할 것인가

이 부분이 모호 했기 때문에 나의 악기를 제작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였던 부분이다

처음에 확 잘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나중은

처음 나온 악기를 연주자가 연주를 하면서 처음보다 조끔씩 좋아지고 있다라는 것을 느끼게 함으로써 기타에 계속 손이 가도록 하는 것 

그러려면 처음에 어느정도 명품다운 소리가 깃들어 있어야 한다 

처음에 너무 안나거나 싸구려같은 소리가 나면 그 악기는 외면 당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어느 시점에서 기타에 잠재되어 있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연주자가 기타에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면 비로써 그 악기는 연주자 것이 된다

 

 

소리를 다룰 줄 알게 되면 명기는 우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안다

반대로 소리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명기는 우연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 할 것이다

 

알고 제작하는 것과 막연히 제작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많은 명기들이 소리가 다른 것은 그 제작가마다 추구하는 소리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원하는 소리가 나와 주어도 더 좋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소리의 세계는 한도 끝도 없는 무한대 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2012년 GSI 컨택

 

수리와 제작에 한참 몰두 하고 있을 무렵 고급악기를 많이 소유하고 계시는 한 분이 수리를 맞기곤 하였는데 그 분이 GSI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주었고 운선씨의 악기 정도라면 한 번 보내 볼만 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있는 곳이고 많은 전세계의 제작가들이 그 곳에 올라가기 위해서 시도를 하지만 99%는 컨택이 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곳 

그 곳에 올라가기만 해도 검증이 된 악기가 되고 전세계에 홍보가 되는 곳 

 

그 분은 될 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해보자고 하여 제작사진과 완성사진을 먼저 보내어 보았는데 워낙에 이름이 있는 곳이라 기대를 하지 않았다 

왜냐면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그렇게 많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사진을 보낸 후 얼마후 연락이 왔는데 일단 사진상으로는 좋아 보인다 한 번 악기를 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악기를 본 후 맘에 들지 않으면 돌려 보낼 수도 있다라고 말해 주었다

일단 한번 악기를 보고 싶다는 말에 그 분은 기뻐하였다

운선씨 악기라면 어쩌면 될 수도 있다라고 그러니 얼릉 보내보자고 ~ 

내 악기가 해외로 나가는 첫 시발점이 되었다

 

GSI 과연 될까? 

난 되든 안되는 내 악기가 해외로 나간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흥분도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외국에 한번도 나가 본 적이 없는데 나보다 기타가 먼저 나가게 되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기타를 보낸 후 시간이 흘렀다 

지금 정확히 생각은 나진 않지만 보내고 한달즈음 시간이 흘렀던 거 같다

그렇게 한참만에 연락이 왔는데 Congratulation ! 악기가 좋다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그런곳에 ..

 

그런 좋은 일이 있은 후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해주었는데 다들 참 고마우신 분들 

그 후 전세계에 내 기타가 홍보 되기 시작하였고 여러가지 일 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는 최초였고 그 전에도 몇몇 이름이 있는 제작가가 시도를 해 보기도 하였는데 다 안되었었다고 한다

그 곳의 악기에 대한 평가기준이 어떤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참만에 연락이 온 걸 보면 한달동안 기타를 지켜보면서 소리의 변화등 여러가지를 본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GSI에 기타가 나가기 시작하면서 여러나라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하였고 주문도 들어오기 시작하였는데 3년이 지났을까 기타의 모국 스페인에 있는 기타페어메거진이라는 곳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하여 흔쾌히 승락하여 인터뷰를 하고 책에 실리기 까지 하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스페인이란 것만으로도 특별한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국내에 제작가 분들도 자극을 받아 기타를 보내기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전 부 컨택이 안되었다 

그 중에 서민석선생님과 이주용선생님은 될 뻔 하기도 하였는데 GSI에서 책정한 가격이 국내에서 파는 가격보다 많이 낮아서 아쉽게도 연결이 되진 못하였다 

이주용선생님은 기타를 보내기까지 하였었는데 다시 돌려 받게 되었다 

그냥 그 때 가격이 좀 낮아도 했으면 전세계로 진출을 하였을테고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데 아쉽기도 하다 

 

내가 처음 GSI에 보낼 당시 국내에서 파는 가격은 300만원 이였는데 3750불로 책정을 해주었다 

거기서 가격을 책정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악기의 품질 제작가의 나이 나라의 선호도 앞으로의 가능성등 많은 부분을 고려하여 책정을 하는거 같았다

 

국내에서 300만 GSI에서 3750불 한화로 400만이 넘었기 때문에 가격면에서도 나에겐 너무도 좋은 조건

 

그 후 기타를 보내고 시간이 지날 수록 나의 기타 가격은 계속 오르기 시작 하였는데

3750불 ---> 4500불 ---> 5000불 ---> 5500불 ---> 6000불 ---> 6500불 ---> 7000불...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 리미티드기타를 보내면 GSI에 10000불로 책정이 된다

그 동안 조금 지쳐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였는데 앞으로는 정신차리고 열심히 하여 좀 더 악기를 외국에 많이 내 보낼 생각이다 

 

앞으로 10년 후 쯤이면 어떻게 될 지...............

음지의 제작가

 

오늘은 기타를 제작하면서 생활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음지의 제작가분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타제작을 직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중에 우리가 알지못하는 제작가들이 더 많다는걸 일반인들은 모르실 거라 생각됩니다

 

기타란 악기가 많은 공정이있고 많은것을 필요로 하는만큼 연관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나무를 벌목하는 사람들  벌목한 나무를 기타제작에 맞게 1차 가공하는 사람들

그것을 구입하여 제작가분들에게 유통하는 사람들

기타 줄을 만드는 사람들

줄감개를 만드는 사람들

악기에 칠을할수 있게 도료를 만드는 사람들

나무를 어느정도 반가공(넥,지판,브릿지등)하여 제작가분들에게 공급하는 사람들

바인딩 퍼플링 로제트등 제작하는 사람들

지금 말한 분들은 그나마 드러나있는 분들에 속하는데

평생기타를 제작하면서 알지못하는 제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바로 하청을 받아서 제작하시는 분들인데 주로 보급형에서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작가가 이름이 조금 알려지고 주문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정상적으로라면 웨이팅기간이 길어지지만 주문이 많아지면 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름있는 제작가기타를 제작해주는 제작가 

알려져서는 안되는 제작가이기도 하죠

 

도제시절 2년간 있었던곳도 이름있는곳의 하청을 겸해서 제작하는 곳이였고 처음 도제를 했던곳은 주문이 많아서 아래사양은 하청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이납니다

 

하청으로 제작을하는 사람들중에도 여러분들이 있는데

전부 제작하여 주는분

전판과 제통을 전문으로 제작하는분

칠만하는분  

그렇게 제작을하고 있긴하지만 평생 이름이 알려져서는 안되는 제작가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음지의 제작가라고 표현하지만 그분들이 왜 생겨났을까요

 

제가 아는 한 제작가분이 있는데 그분은 많이 알려져 있는분의 하청을 오랜동안 하시면서 생활을 하였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청이 줄어들고 끊기면서 생활고가 힘들어지고 결국에는 이혼과 공방을 접기까지 하였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전에 가수 누구도 화가로 활동하면서 자기가 그리지 않고 재능있는 분을 사서 그림을 그려 팔기도 하여 이슈가 되기 하였었죠

 

자기이름과 브랜드를 걸고 하지만 하청을 주고있는 걸 숨기면서 판매하는 것 

어쩌면 자연스런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악기 가격이 5000불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저렴한 모델을 제작해주면 안되겠냐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많은 고민끝에 보급형 모델 처음엔 리베르떼 두번째는 베누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난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다른 제작가와 같이 제작을 한것은 라벨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맞다라고 생각하여서 그런건데 주변에서는 이운선이름만 넣는게 좋을거같다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 제 주관대로 밀고 나갔죠

 

기타제작 하청의 세계

하청이란게 과연 좋은 것인지 안좋은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타의 변형과 수리 그리고 관리요령

기타를 오랜동안 가지고 계신분들은 수리를 한번쯤 경험을 하였을거라 생각합니다

나무로 제작되어진 악기는 온도와 습도 그리고 힘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관리가 필요하지만 대부분 처음에는 관리가 잘 안되기 마련이죠  관리요령을 알고있어도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거 같긴해요

관리가 되는 시기는 직접 악기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맡기고 수리비용이 들어가야 그제서야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는것 같아요 

 

악기에 문제가 생겨 수리가 들어오는것 중에서 비중이 큰것은 넥 변형과 갈라짐인데 조금만 신경을 쓰면 예방을 할수 있는것들입니다

 

넥변형

기타의 네크 변형때문에 제작가분들도 각자의 노하우를 접목을 시키곤 하는데 아무리 잘 제작을 하여도 어느정도 관리를 해주지 않는다면 변형이 올수있습니다

보통 기타를 제작하는 환경은 온도 20~25도 습도 45~55%에서 제작을 하는데 제작되어진 습도와 온도를 맞추어 주면 아주 좋지만 4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힘들기도 합니다

 

네크의 변형의 요인 --> 온도 습도 힘의 작용 

네크가 휘는 이유는 줄이 당겨져 있기때문에 항상 힘을 받고있는데 거기에 여름철 높은 습도 높은 온도까지 더해지면 네크가 앞으로 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겠죠   

반대로 힘은 받고 있지만 겨울철 낮은 온도 낮은 습도가 지속되게 되면 뒤로 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지겠죠

 

어떤 이는 기타에 줄을 풀어놓으면 안된다는 사람도 있고 연주후 보관할때 줄을 조금 풀어놔야 좋다는 이도 있습니다

둘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이해하기 힘들수도 있겠지만 사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줄을 풀지 않아도 오랜동안 네크의 변형이 없는 기타도 있고 네크이 변형이 오는 기타도 있기 때문인데요 여기에는 복잡한 것들이 많이 접목이 되는데 온도와 습도를 기본적으로 관리해주는 상태에서 몇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네크의 건조기간 두께와 강도 제작할때 네크와 지판의 휨의 방향 그리고 줄의 높이가 작용하는데에 큰 몫을 하게됩니다

 

오래전 그분과의 대화에서 넥 휨때문에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기타를 구입하신 분이 매년마다 넥이 휘어서 맡기곤 하였습니다 

저는 이 악기는 관리를 잘 못한것 같습니다 매년 여름철 지나서 오는건 여름철에 관리를 해야되는데 관리를 안해서 변형이 온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냥 수리를 해주는 것은 아닌것 같아요 

그분은 저에게 넥이 안휘는 기타는 어떻게 설명할래 

   선생님 넥이 휘는 기타는 관리와 관계없이 기타를 잘못 제작하여서 그런가요?

그런거같다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에게 그럼 국내에 들어온 명기들도 넥이 휘어서 수리를 하는데 그 명기 제작가분들이 잘못 제작을 하여서 넥이 휘는건가요?  

그분은 그렇지 잘못만들어서 휘는 거라고 말씀을 하셨다

난 그말에 동의할 수 없었고 이어서 네크의 변형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였지만 여러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조금은 서로의 의견차이가 있었다

 

보통 네크의 관리요령은 

건조한 겨울에는 줄을 풀어놓지 않아도 된다  

온도가 높고 습한 여름에는 연주후에 줄을 3~4바퀴 풀어놓는다 

계절에 관계없이 평상시에도 연주를 한 후 보관시 줄을 3~4바퀴 풀어 놓는다 

 

위 관리요령이 보통 네크의 관리요령이긴 하지만 좀 더 확실한 네크 관리요령은 기타마다 네크의 상태가 다르므로 자기 악기의 상태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기타를 받고 정조율을 한 상태에서 어느정도(3~6개월) 시간이 지나면 자기 기타의 네크의 성질를 파악 할 수가 있다 

줄을 풀어 놓지 않았을 때 앞으로 휠 가능성이 보이면 연주 후 보관시 줄을 조금 풀어 놓으면 되고  

줄을 풀어 놓지 않아도 내 기타는 앞으로 휠거 같지 않다라고 판단이 되면 줄을 풀어 놓지 않다도 된다

하지만 줄을 풀어 놓지 않고 사용하다보면 앞판의 배부름현상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나무에는 휨의 방향이 있는데 앞으로 휘는 성질이 있는 나무 뒤로 휘는 성질이 있는 나무 휘지 않는 나무가 있다

 

네크를 제작 할 때 앞으로 휘는 성질이 있는 나무로 제작을 하였다면 정조율한 상태에서 관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을 하면 거의 100%로 앞으로 휘게 된다

이럴때는 여름과 겨울의 상관없이 연주후에 줄을 조금 풀어 놓는게 좋다

 

반대로 뒤로 휘는 성질이 있는 나무로 제작을 하였다면 정조율한 상태에서 보관시 줄을 풀어 놓지 않아도 된다 이런경우는 오히려 줄을 풀어 놓으면 뒤로 휘는 경우가 있다 

 

스트레이트인 나무로 제작을 하였다면 여름철에 연주후 줄을 조금 풀어 놓으면 네크의 변형방지에 도움이 된다

 

네크변형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있는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기 기타 네크의 상태를 알고 관리요령도 안다면 네크의 변형에 의한 스트레스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전판과 측판 후판의 갈라짐 

제작가들은 보통 제작을 할 때 습도 45~55%에서 제작을 한다

그래서 악기를 보관 할 때 제작당시 습도를 맞추어 주면 가장 이상적이다

나무는 습도에 의하여 항상 수축과 팽창을 하게된다 이런 간단한 성질을 알면 갈라짐이 거의 겨울철 건조할 때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첼로 같은 크기가 큰 악기 일 수록 그래서 더욱더 관리가 필요하다

 

건조한 겨울철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케이스안에 작은 습도계를 부착하여 습도를 체크하여야 되며 댐핏이나 기타 습도를 관리 해줄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중 자기에게 편한 방법을 선택하여 습도를 유지 시켜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겨울철 갈라짐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된다 

 

네크의 변형과 갈라짐과 관리요령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요 

기타관리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현주 하현주 줄높이 세팅의 중요성

 

기타연주가 중수급 이상이 되면 줄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상현주와 하현주를 손대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직접 줄높이를 조절한 경우 열에 아홉은 세팅이 불완전하고 그로인하여 악기의 성능이 다 발휘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부분이고 줄높이를 낮추거나 높이거나 할 때 완벽한 세팅을 할 자신이 없으면 공방에 다녀오는게 좋다

 

클래식기타에서 기본적인 줄높이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1번줄 3미리 6번줄 4미리이다 

그 밑으로 내려가게되면 버징이 날 확률이 크고 더 높게 되면 연주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줄 높이가 낮은걸 선호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표준보다 조금 낮게 세팅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부분은 제작가들도 표준 줄높이로 거의 세팅을 하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조정하는 경우가 있고 나의 경우는 6번줄을 3.8로 맞춘다  여기서 음쇠의 높이도 작용을 하게되는데 음쇠를 조금 높은걸 사용하게되면 음쇠 위에서 줄높이를 체크하면 3.8인데도 체감적으로 줄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지판에서 부터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음쇠의 높이는 보통 1미리이지만 그 외 조금 높은걸 사용하기도 한다 

 

세팅으로 인한 소리의 변화

처음 줄을 터치하면 줄 ->상하현주 -> 브릿지를 통하여 소리가 나는데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면 줄을 바꾸면 소리가 변하고 상하현주 제질을 바꾸어도 소리가 변하고 브릿지를 어떻게 제작하냐에 따라서도 소리가 확 바꾸어지기 때문이다 

 

세팅으로 인한 악기성능을 저하시키는 요인들을 보면

줄이 상현주 밀착되어지는 부분(홈)이 좋지 않을때

상현주가 지판과 넥의 밀착되어 지는 부분이 잘 맞지 않을때

줄이 하현주와 닿는 부분이 좋지 않을때(면적과 각도)

하현주가 브릿지 홈에 딱 맞지 않을때(옆면과 바닥)

이다

 

공방에 가지않고 직접 손을 델 때에는 이러한 부분을 참고하여 아주 잘 하면 되는데 쉽지는 않다    

 

* 완벽한 세팅을 할 수록 악기가 가지고 있는 성능을 최대한 발휘 할 수가 있다 *

힘들었던 첫 제자?

 

2009년 겨울 파주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그분에게 자주 왔다갔다 하던 애호가 한분이 있었는데 그분 기타를 주문하고 애를 많이 먹였던 사람(제작가들 사이에서는 진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제작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기도 하였다

 

어느날 그분에게 일이 있어 방문을 하였는데 마침 그 애호가분도 같이 있었다

그 애호가분은 그분에게 제작을 배울려고 하였었는데 그분은 바쁘고 상황이 안되서 몇 번 거절을 하곤 하였던거 같다

이야기 도중 그분은 대뜸 운선아 니가 좀 가르켜라 

네?

선생님도 별말씀을요 제가 지금 누구를 가르켜요 

아냐 너 정도면 실력좋으니 할 수 있어

운선이 실력 좋아요 거기서 배우면 다 배울 수 있으니깐 운선이 공방에서 해 보시는 건 어때요?

그 애호가분은 고민하는 시간도 없이 

아 좋죠 

마치 두분이 미리 이야기를 맞추어 논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 그래도 전 힘들거 같아요

자신도 없고 부담이 많이 되고 

정중히 거절을 하였지만 그분께서는 해보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통에 고민 끝에 네 그럼 가르키는 것은 정말 부담이 되어 안될 거 같구요

제 공방에 작업대가 몇대가 있으니 작업 공간하고 제작을 할 수 있도록 제 공구들을 제공해 드릴께요

대신 저에게도 피해가 있으니 3개월동안 사용하시고 비용은 100만원만 받겠습니다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애호가분인 그분도 제작에 관해서 많이 알고 계시는 듯 하였고 제작이론은 이미 나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신 거 같아서였다

 

그애호가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라고 손벽을 쳤다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서 왔다갔다 하는것도 힘들지 않을거 같고 3개월이라면 충분히 한대정도는 제작해 갈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간의 합의를 보고 내일부터 하기로 결정 하였다

첫날 아마도 그 애호가분은 기대와 흥분된 기분으로 공방에 왔을 거라 짐작 한다

 

아침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업대와 작업할 수 있는 공구들은 공방에 비치된 것을 마음껏 사용하도록 하였다

내 일도 바빴기 때문에 난 나의 작업실로 들어가 작업을 하였는데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기타에 대해 많은 지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옆에 가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란 생각도 들어서 가까이 가지는 않고 잘 하고 계시겠지 생각하고 애써 무시했다

 

점심때가 되어서 같이 식사를 할려고 가보니 아직 아무 작업도 진행된 건 없었다

같이 식사를 하고 다시 난 작업실로 들어갔고 그 애호가분은 자기의 작업대로 갔는데 시간이 흐르고 잘 하고 계시는지 궁금하여 살짝 가보았는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다시 가보니 아무 작업도 하지 않고 그냥 아까처럼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여서 작업 안하세요?

그 애호가분은 잠시 머뭇 거리시더니 한번도 안해봐서요라고 말을 흐리게 이야기 했는데 이 상황에서 가르켜 주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될 거 같이 보였다

아이고 이를 어쩌지?

할 수 없이 방법을 설명하고 시범까지 보여주며 가르켜 주기 시작

 

그 애호가분은 따로 구입한 오래 건조된 하우저전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작중 두께를 잘 못 잡아서 쓸수없게 만들어 버렸다

할 수 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좋은 것을 골라 주며 이번에는 잘 못하면 안됩니다라고 말을 하였는데 하는 것을 보니 또 버리게 생겨 어느정도 작업을 해 주었는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였다

기타제작에 대한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실전은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럼 잘난척이나 말든지 속으로 생각하며 앞으로의 일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공방을 오픈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직 더 배울것도 많고 내 악기에 집중하기도 시간이 없는데 혹을 달아 버렸다

그런데 이미 없질러진 물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방법을 가르켜주지 않으면 진행이 안되었는데 가르켜 주면서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왜냐면 자기가 할 줄 몰라서 가르켜 주는 것인데 그때마다 지금 상황과 맞지않는 제작지식을 물어보며 이런거아냐며 자기 지식을 과시했다 

속으로는 '지금 그 것과 지금 하고 있는 작업과 무슨상관인데 지금 하고 있는 것이나 잘 하세요 나원참 그리고 처음에 제가 제작을 가르켜 주기로 했나요?' 라고 소리질러 말했지만 실제로는 말한마디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았다

 

어느날은 아침에 오자마자 바닥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지금 머하세요?

습도 1도만 오차가 있어도 제작하는게 힘든데 3도나 차이가 난다며 오면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되는거 아니예요?

으......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며칠 후 난 그분에게 연락해 선생님 그 애호가분 아무것도 못하던데요 지금 제가 다 봐주고 있는데 넘 힘들어요

야 원래 그런거야

네?

원래 다 그런거라고

아 그 그런거예요?

누구를 가르킨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한번도 가르켜 본 적이 없고 아직 갈길이 먼 제작가가 그런다는 것은 더더욱

 

한 공정이 끝나고 다음 공정이 넘어 갈 때마다 실제로 그렇게 말 하지는 않았지만 '머하냐 와서 다음 공정 제작방법 알려줘야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제대로 코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3개월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것

빨리가라 3개월

 

측면 구부리는 작업 할 때 시범을 보여주고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어 그래 알고 있었어 라는 표정은 나에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배탈이 나고 뒷골이 땅기는 듯한 힘든 스트레스

그렇다고 해서 확 머라고 할 수 있는 배짱도 없는 내가 싫었다

 

나의 일은 낮에도 하긴 하였지만 그 분에게 신경쓰는 통에 집중이 잘 안되어 그 분이 가고난 후 밤이 되서야 집중하여 할 수 있었다

 

만고의 진리 시간은 간다

 

한달 두달 제작은 더디게만 흘러 갔지만 곧 약속한 3개월이 다가온다

그런데 이 불안함은 왜 오는지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3개월이 되었지만 기타제작이 많이 진행이 안되어 결국 6개월까지 가고야  말았다

그런데 그 후 결과가 기막히다

난 꾹 참고 많은 걸 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 생각은 정 반대 였던 거 같다

여기저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운선이는 내가 가르켰다라는 말과 건방져서 나한테 맞았다는 등등

이런 말도 안되는 ........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난 그 애호가분에게 자재비 생각이 나서 제 자재쓴 자재비 왜 안주시냐고 몇 년이 지났는데 좀 심한거 아니예요?

그 애호가분은 제대로 가르켜 주지도 않았으면서 자재비 달라고 그러냐고 오히려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 말에 갑자기 화가 나서 처음에 계약당시 제가 가르켜 주기로 했나요? 주시기로 한 자재비 지불 하세요

그애호가분은 같은 말만 계속 하시길래 나도 같은말로 이야기 했는데

내참 애들 싸우것도 아니고 상황이 좀 우습게 되었다

아니 왜 같은 말만

마치 말에 계속 도돌이표가 있는 것처럼 대화가 이어졌다

나도 좀 흥분을 해서 자재비 안주고 그냥 가길래 뒤돌아 가는 그분에게 자재비 ~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암튼 서로 격 떨어지는 말싸움을 한거 같았다

내가 좀 심했나? 그냥 머 안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분은 6개월동안 내 진을 다 빼고 갔는데 운선이는 내가 가르켰다라고 지금도 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투자가 그리고 독점계약

7년전쯤인가 한번의 기회가 왔다

자력으로 모든걸 할려고 하다보니 항상 바쁘게 제작과 수리를 하고 있었지만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늘 부족했다

목공기계도 공방오픈할때 가장 싼걸로 장만했던 터라 늘 말썽을 부리고 없는 것은 친분이 있는 제작가분의 공방에 가서 빌려쓰곤 하였다

돈이 조금 모이면 부족한 자재를 사고 공방월세와 운영비등 지출하고나면 통장에 0원이 찍히기를 반복했던거 같다

 

어느날엔가 악기를 구매하신 분과 이야기 중에 투자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는데 2억을 이틀후 투자해주기로 했다

그 분과 이야기를 마치고 공방에 돌아와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니 좋아서 잠이 오질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잠이 안 올 수 밖에 없었던거 같다

 

그 당시 생각하였던 것들 

쓸만한 목공기계와 수공구

고급악기에 사용할 자재들

개인전시회

유럽진출

외국에 방문하여 실력있는 연주가에게 악기 소개하기

홍삼먹기 

서울로 공방 옮기기

등등

 

그 날 하루는 꼬박 앞으로의 계획들만 생각하였는데 기분이 너무도 좋았다

  

난 믿어 의심치 않고 투자 해 주실 거라 생각을 하였다

다음 날 오후 그분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아내에게 투자한다고 이야기 하니까 반대가 너무 심하여 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난 괜찮습니다 선생님  신경쓰지 마세요 

 

투자금은 사라지고 나의 계획도 없어지고

허탈감에 며칠 일을 못했던거 같다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원점에서 늘 했던데로 하루 하루를 .........

 

 

 

독점계약

정확치는 않지만 그 후 1년이 지나서 였던가 날짜는 가물가물하다

나이가 나와 비슷한 한 분이 연락을 하고 공방에 방문을 하였다

제가 얼마전 우리나라 기타를 몇대 가지고 외국에 다녀 왔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악기를 외국에 알리고 싶고 한국에서 기타샆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운선씨와 독점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제작가는 제작만 하시고 판매는 제가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좋은 악기들을 외국에도 가지고 나가서 한국의 좋은 기타들을 알리고 싶습니다

외국의 샾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운선씨의 악기를 호평하고 좋다고 하여서 귀국하자마자 달려 왔습니다

 

좋은 말들을 많이 했다

 

그래요 한번 해 봅시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악기를 외국에 널리 알린다고 하신 말씀과 제작가는 제작만 하십시요라는 말에 가슴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계약서에 싸인하고 아 이제 제작에만 집중하면 되겠구나하고 제작만 하며 보내고 있었다

독점계약을 하였기 때문에 난 그 어떤 주문도 받을 수 없었는데 문의 전화가 오면 그쪽으로 연락하라고 이야기를 해주었고 거래하였던 선생님들에게도 그렇게 말을 하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독점계약을 한다는 것은 그 전보다 더 좋아질 거라 생각을 하였는데 악기를 건내주면 결재가 항상 늦었고

돈을 받기위해 지금 제가 월세도 내야되고 악기대금을 일부라도 해 주시면 안될까요?

사정을 하면서 돈을 받기위해 이러는 내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그래도 독점계약하기 전에는 그런적이 없었었는데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찌하리 이미 한것을

 

1년이 지나자 난 독점계약을 하기 전 보다 더 안좋아지고 형편은 더 힘들어졌다

전에는 그래도 항상 주문이 있었고 일거리가 많았는데 이게 무슨꼴인가 

난 그 사람에게 연락해 사정을 이야기 하였고 독점계약을 하였는데 악기를 가져가지 않으시면 전 머먹고 삽니까

공방에 악기를 쌓아만 두나요 

그 당시 일년에 5~10대이상 계약서에 적혀 있었는데 계약후 1년동안 5대를 가져갔는데 1년후 제작해둔 악기를 말하니 지금 가져갈 수가 없다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제가 운선씨의 경제적인 부분을 왜 신경을 써야 하나요?라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난 그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난 찾아갔다 무언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아서 이다

팔지도 못하시고 가져가지도 못 하시면 절 보고 죽으란 소리 아닙니까

샾에 있는 제 악기 제가 가져가고 받은돈 10원도 빼놓지 않고 돌려 줄테니 우리 없던 일로 합시다

사채를 써서라도 받은돈 돌려줄 심산이였다

그 사람은 네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겠습니다

난 이야기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공방으로 돌아왔는데 다음 날 연락이 왔다

운선씨 계약해지 해 드리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샾에 있는 운선씨의 악기를 소비자가격으로 사가세요 그럼 해지 해 드리겠습니다

받은돈 10원도 빼 놓지 않고 돌려주겠다고 했는데 소비자가격으로 사가라니 너무한다 생각이 들었다

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고

몇 날 몇 칠을 고민에 고민 고민속으로 들어가 지냈던 거 같다

 

계약서를 보기 시작했다

꼼꼼히 보니 계약위반 사항이 많이 있었는데 지인분에게 이야기를 하니 자기가 도와 주겠다고 하였다

지인 이야기는 이 계약은 불공정계약에 해당이 되고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하면 계약을 취소 할 수도 있다고 하였는데 거길 통하지 않고 잘 아는 서초동에 있는 법무법인을 통해 최대한 빨리 해결해 주겠다고 

개인 변호사보다는 법무법인이 더 힘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은 그렇게 진행이 되었고 난 살기 위해 해야만 했다

며칠 후

변호사가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그는

내용증명을 받아보고 나에게 연락이 왔다

운선씨 법 좋아하나봐요

내용증명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 한번 해 봅시다

날 비꼬듯 이야기를 하였는데

난 내 손을 떠난 일입니다 나에게 연락하지 말고 변호사와 이야기 하세요

라고 말하고 그 사람과는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몇개월 후 독점계약은 해지가 되었다 

 

그 사람은 독점계약 당시 우리나라의 우수한 악기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하였었는데 현재는 샾을 운영하면서 반대로 전 세계의 우수한 악기를 우리나라에 적극 알리고 있는거 같다

제자편

힘들었던 첫 제자? 후  조금 지나서 한 분이 제작을 배우고 싶다고 하여 마음이 맞아 배워갔는데

그 분은 직장인이였고 일과가 끝나면 와서 시간이 되는 데로 배워갔다

그렇게 한 3년을 배우고 5대 정도 제작을 하여 갔으며 기본적인 제작기법을 다 습득을 하고 나갔는데 마지막에 다 배우고 나갈무렵 교만의 마가 극하게 들어와 그 후 그 분을 보지는 않는다 

 

어쨌든 2명이 지나가고 3명을 더 가르켰는데 그 3명은 원하는 걸 얻었으며 지금은 각자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윤선호제작가

용인 공방에 있을 무렵 제작을 배우고 싶은 2명이 방문을 하였는데 두명중 한명이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한번 대리고 있어 보기로 하였다

물론 그 결정도 몇 개월이 걸렸던 거 같다

 

선호가 공방에 첫 출근할때가 겨울이 올 때쯤 이었던 거 같은데 첫날 무엇을 시킬까 고민하다가 마침 밖에 공방안에 화목난로에 땔 통나무들이 생각이 났다 

선호야 너 혹시 도끼질 해 봤나?

네 선생님 시키실 일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아 그래? 그럼 밖에 도끼로 쪼갤나무들이 조금 있는데  한번 해볼래?

힘들 거 같으면 안해도 되

아니예요 선생님 제가 할께요

그래 그럼 한번 해봐

사실 나도 도끼를 사놓고 한 번도 해보질 않은터라 하루에 조금씩 하다보면 일주일이면 되겠지 생각을 했었다

서너시간즈음 지났을까? 선호가 들어왔다

힘들지 좀 쉬었다해

아녜요 선생님 더 팰거 있어요?

엉?

다했냐

네 다했어요

그~래?

수고했다 와서 차한잔 해

난 속으로 대단한 놈이군 생각했다

 

선호는 참 착하고 성실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오기전 플룻수리를 하였고 연주도 잘 한다

도제로 들어왔기에 바닥부터 하나씩 하나씩 제작의 길을 일구어 나갔는데 젊어서 그런가 빠르게 습득해 하나를 가르키면 둘을 아는 듯 하였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서 독립을 시켜도 되겠다 생각이 들어 나가기전 혼자 제작하면서 알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노하우를 몇가지 알려주고 독립을 시켰다

선호의 악기를 보면 깔끔한 외관과 내구성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으며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악기이다 

부족한 것은 자기 홍보를 못하는 것이 참 아쉽다

좋은 악기를 많은 사람들이 보기만 한다면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텐데 인터넷활용도 잘 못하는 것 같다

시간이 걸려도 성장하여 굿건히 실력있는 제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 

 

안철영제작가

이분은 나이가 조금 있다 

연주를 잘하는 애호가 분이셨는데 제작을 배우는 것에는 나이가 상관이 없다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신 분이기도 하다

제작에 조금씩 관심을 갖다가 본격적으로 나에게 제작을 배워서 상당히 빠른시간에 공방을 오픈하여 지금은 하루하루 바쁜 생활을 하고 계신분

수리와 주문이 항상 밀려있는 듯 하다

고생을 한번도 안 해봤을 거 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 꼼꼼한 성격과 집중도가 있어서 어려운 부분도 곳 잘 해내시는 걸 보고 조금만 지나면 보다 멋진 기타들이 나올 거 같다

현재 전라도 광주에서 공방을 운영중

 

 

다음 제작가는 음 

야 !!! 운선아 칠 좀 해봐 !

엉?

좀 보게 어떻게 하는지

어?

 

내 제작인생에 복병이 왔다 

지금껏 제작에 몸 담으면서 나에게 누가 이렇게 말을 해본적이 있던가

제일 친한 친구도 나의 제작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물어보거나 함부로 말하지 안했는데 ㅡㅡ.

 

.

.

.

 

 

그게 보고 싶다고 지금 칠하는 중도 아니고 .....

알았으니깐 한번 해봐

ㅡㅡ.

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순간 고민이 되었다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그래 내가 이해하자 나중에 이해할 날이 오겠지

 

어 지금 칠 중인 기타가 없어서 지금은 안되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있어서

나중에 보여줄께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되게 아쉬어 하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란다고 하면 제작의 신비감은 사라지고 내가 시키면 하는 원숭이 꼴이 될 것 같아서다

머 그냥 보여 줄 수도 있지만 하면 안 될것 같은 예리한 느낌 이랄까

 

에휴 이번 제작가는 그냥 넘어갈껄 왜 써가지고 좀 후회 됩니다 

어떻게 써야 되나 ㅡㅡ.

 

.

.

이번 제작가의 이야기를 쓸려면 먼 과거로 건너가야 된다 

 

올해가 2020년이니깐 지금으로 부터 28년전

난 그 당시 이리시(현재 익산시)에서 살았고 시내에 있는 한음기타학원에 몸 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와서 등록을 하고 갔다

초보자라 처음에는 내가 가르켰지만 어느정도 실력이 올라와서는 원장선생님이 가르켰다

 

그 당시에는 정말 열심히 기타를 배우며 연주하고 

 

아련한 추억이 밀려 옵니다

 

기타학원이 끝나면 바로 집에 가질 않고 이 친구와 밤 늦게까지 남아서 자주 연습하곤 했는데 

서로 연습한 곡을 들어보며 마치 연주가가 연주를 하는 마냥 인상도 쓰며 몸도 가끔 움직여주며 연주를 

그 때는 한참 감수성이 있었던 때라 그런지 조금 분위기만 타도 그 속으로 빨려 드러가곤 하였다

교회에 초청을 받아 독주도 하였고 이 친구와 이중주도 하여 교회가 떠나 갈 듯한 박수와 앵콜소리도 듣고 

 

학원에는 한음기타 합주단이 있었는데 매년 정기연주회를 하였고 난 거기서 막내여서 정기 연주회때 선배님들이 연주를 할 의자를 나르고 내년엔 나도 당당히 무대에 서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다

이 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 이었으리라

 

원장선생님은 나와 이친구를 클래식기타의 매력에 푹 빠져 들게 만들었고 멋진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원장선생님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드셨던지 학원을 오래 운영하진 못하셨다

다음 정기회때는 무대에 설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무너졌다

 

난 더 배우러 부산으로 갔고 그 친구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

.

.

 

그로부터 25년 후

밤에 문자 한통이 왔다 

 

저 혹시 예전에 한음기타학원에 있었던 분 아니신가요?

 

네 맞는데 누구신가요?

나 **다 

어? 누구?

나다고 **

 

순간 오랜된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야 정말 너냐?

그래 임마

 

담날 그 친구는 먼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나에게로 왔다

당시 나는 경기도 양평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정말 반가왔다

이 친구는 그 전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만나자마자 단숨에 알아봤다

 

그날 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한잔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를 하였다

그 친구는 생활고에 한동안 기타를 접고 일을 하였고 몇 년 전부터 기타를 다시 잡고 지금은 전주기타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우연히 기타에 관련된 걸 검색하다가 익숙한 이름과 사진이 있어서 보니깐  너와 닮아서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이 친구를 다시 만나고 이친구가 운영하는 당구장도 가보았는데 당구장 평수가 100평도 넘어 보였다 

인테리어도 굉장이 잘 되어있어서 세련된 분위기였다

친구 어머님도 만나서 인사드리고 또 밤새 예전 추억들 지나온 시간들을 이야기 했다

 

그 후 자주 만났는데 

어느 날 아침부터 누가 문을 두들겨 누구세요? 문을 열어보니 그 친구였다

혼자 산다고 장을 듬뿍 싸들고 반찬 해주겠다고 왔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멀 이렇게 해 

아녀 좀 기다려봐 짜장하고 몇가지 반찬 해주고 가께

알았어 ㅡㅡ.

 

반찬을 만들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야 운선아 칠 좀 해봐

엉?

좀 보게 어떻게 하는지 

어?

.

.

.

 

그 친구는 얼마 후 다짐을 하였는지 나에게 제작이야기를 하였다

제작 한번 해보고 싶다

어엉?

지금 운영하는 당구장은 어떻게 하고 

잘 되고 있더만

아냐 당구장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지금 아니면 평생 후회 할 거 같다

아 그래

근데 친구야 이길 정말 쉽지 않은 길이야

재능만 있어서도 되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많은 걸 요구해

난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친구는 

나중에 후회해도 내가 하고 니 원망 안할께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음.....

 

마침 선호도 하산하고 혼자 있긴 한데 그래도 쉽지많은 않은 길이라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한 두달 지났을까 

그래 한번 해보자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배울때는 스승과 제자가 되고 도제가 아닌이상 나에게 피해를 주는 거니까 레슨비를 받았다 

며칠 후 친구는 당구장을 정리하고 나에게로 왔다

방 한켠을 내주고 칠 부터 가르켰다

 

내 입장과 생각들은 그 친구가 그 당시 가지고 있는 입장과 생각들은 많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칠에만 집중하도록 하였는데 한 달이 되니 어느정도 칠을 해 냈다 

 

 

제작을 배우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올 때 반드시 찾아 오는게 있다

그것은 "교만" "극한교만"

 

빨리 맛을 봐서일까 친구에게도 빨리 찾아 왔다 

 

이 친구는 나에게 전에 다녔었던 기타동호회에서 알게된 대학생이 한 명 있는데

형편이 힘들어해서 기타한대를 후원해 주고 싶다고 하였다

니가 줄 수 없으면 사서라도 주고 싶다고 하길래 그래 가난한 대학생 후원이라고 하니까

내가 한대 주마 

친구는 내가 준 악기를 그 대학생에게 주고 왔는데 문제는 그 후에 터졌다

그 때 준 악기는 베누스기타 였고 당시 이 기타는 홍윤식 & 이운선 이렇게 선생님과 제작을 하였었는데 그 학생에게 술자리에서 자기가 만들었다고 해버린 것이다 

 

이제 겨우 한달 칠을 조금 배웠을뿐인데 이건 머

그렇다고 해서 배우면서 칠한 악기도 아니고  

 

며칠 후 그 학생은 고마워서인지 인터넷에 이 악기를 제작해주신 000(친구이름)선생님과 이운선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라는 글을 올려서 파장이 생겨버렸다 

나중에 난 그걸 알게 되었고 친구에게 물으니 아 그거 내가 그 학생에게 전화해서 내리라고 할려고 했었다고 말을 하였다    

하지만 난 내가 친구에게 묻지 않았다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난 이 친구에게 나무랬고 더이상 너를 가르키기는 힘들 것 같다 

넌 기타제작을 배우면서 내 악기에 조금이라도 손대면 니가 다 제작했다고 할 놈이다 나가라

대신 나 말고 다른 곳을 소개해 줄테니 그 곳에서 해봐

 

짐싸 

친구는 냉정하게 말하는 나를 원망 했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교만을 지적했지만 내가 친구라 그런지 편하게만 생각 했을 수도 있고 내가 또 친구라 격없이 가르킨 것도 있는 것 같았다

한번의 지적으로 넘어가고 다시 가르키는 것은 내 맘이 허락치 않았다

친구 어머님께 국내에서 실력자로 꼭 만들어 놓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하였었고 한 번의 실수로 친구를 내치는 것은 누가 봐도 심한 것 일 수도 있다

친구는 또 자기의 실수 한 번 때문에 꿈이 무너진다면 얼마나 상처를 입겠는가

 

제작가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많이 경험 할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다른 곳에서 경험을 해보면 내가 자기에게 준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알 것이고 앞으로의 험난한길을 뚫고 가야하는데 조금 고생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은 판단에 그 곳에 보내기로 했다

몇 개월정도 있다가 다시 데려올 생각이었다

 

기타제작을 하면서 오는 교만은 쉽게 떠나가지 않는다

그 교만은 때론 스승 위에 서있다

교만에 지배되면 나중에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어 결국 실패하게 된다

 

친구에게 온 교만은 내가 머라고 했다고 해서 떠나가지 않는다  채찍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안 될 수도 있다

그 만큼 교만이란 놈은 강력하다

만약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나도 포기 하겠지만 스스로 깨닫는 다면 난 그 친구에게 교만을 자신감으로 만들어 주리라

 

친구를 보낸 그 곳은

내가 2년동안 도제생활을 한 곳

 

그 곳에 계신분은 사람을 잘 다루고 가르키는 데에 매우 인색한 분  제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친구를 마음껏 부려 먹을 것이다

친구는 내 프로필에 올라와 있는 스승에게 배운다는 생각에  열심과 충성을 다할것은 불 보듯 뻔 한 일

 

친구와 짐을 싸고 같이 차를 타고 그 곳에 갔다

차에서 나는 친구에게 그 분에게 니가 당구장 팔고 돈이 있다는 내색을 절대 하지 마라고 당부 했다

나중에 공방을 오픈 할 때 돈이 필요하니 쓰지말고 꼭 쥐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다

 

도착하여 선생님과 인사후에 나와서 근처 방을 같이 알아 보았는데 가까운 곳에 마음에 드는 깨끗한 방이 있어서 계약하고

난 친구에게 침대하나 사주었다

 

친구는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니 잘 적응하며 배우리라

 

첫 달

두 달

.

.

가끔 방문하여 잘 하고 있는지 보러갔는데 이 친구는 충성을 다하고 있는 듯 하였다

선생님은 기타제작 보다는 잡다한 일 들을 많이 시키는 듯 하였는데 내가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 도 보기 않좋을 거 같아서 조금 더 지켜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는 결단을 하였는지 나에게 말을 하였다

운선아 나 여기 선생님에게 올인 해 볼려고 한다

순간 오래 전 조영호 생각이 났다 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었고 결국 마음에 상처만 입은체 제작을 포기하고 남해로 갔는데......

머라고 다시 말해봐

선생님에게 올인 한다고

음...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고 친구가 선택한 길을 내가 머라고 한다고 해서 들을 것 같지 않았다

말리고 싶고 전에 충분히 너에게 말을 한 거 같은데 너의 선택이니 이제부턴 알아서 해라

지켜볼께

얼마후 그 친구는 선생님에게 당구장 판 돈으로 차를 사주었다

그 당시 선생님은 빛이 많아 개인회생중이였고 차도 판 상태여서 친구차를 자주 타고 다니곤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 던 모양이다

난 친구가 그 곳에서 다만 얼마라도 받으면서 일을 하기를 바랫는데

나의 바램 뿐 모든게 뜻대로 되지 않는 거 같다

 

선생님은 친구에게 기타를 한 대 만들어 보라고 자재를 주었는데 수 개월이 지나도 제작이 진행이 되질 않았고 친구도 조금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곳은 보급형 위주로 제작을 하기 때문에 매달 수십대씩 제작을 한다 

한번은 어떻게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방문을 하였고 친구가 일 하는 걸 보았는데 제통작업 전판작업등 보니 엉망으로 하고 있었다 

난 친구에게 야 이게 머냐 선생님이 이렇게 가르키더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실력은 예전에 칠을 가르켜봐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밖에 못하는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내가 머라고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난 선생님에게 따로 이야기를 하였고 선생님 친구 작업하는거 보니까 엉망이던데 너무 안르켜 주는거 아니예요?

아님 가격이 싼거라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건가요?

아냐 운선아

몇가지 시켜보니까 시키면 머든 다 해낼 놈이야 

조율하고 있는거고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넌 신경쓰지마

음..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더이상 그 부분은 거론하지 않았다

에휴

앞으로의 친구의 제작인생이 어떻게 될지

나이가 어린것도 아니고 너무 시간을 소비하면 안될텐데 걱정이 되었다

 

두 살

세 달

.

.

.

여덟 달

 

8개월동안 친구는 발전이 별로 없었다

일하면서 돈을 받은것도 아니고 기타제작실력이 는것도 아니고 시간과 돈만 낭비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친구를 버릴 것인지 아니면 살릴 것인지

친구는 선생님에게 올인한다고 하였지만 이대로 놔두면 몇 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친구가 원하는 것은 쉽게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가 포기하겠지 

 

친구야 니악기 제작 어디까지 진행됬지?

어 아직 제통도 못했어

8개월 동안 제통도 못하였다는게 참 ..

나와라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알았어

지금은 내가 바쁘니까 집에가서 좀 쉬고 있어

알았어

 

며칠 쉬다가 친구는 좀이 쑤셨는지 내 공방으로 찾아왔다

좀 쉬고 있으라니깐 왜 벌써 왔어

어 그냥

그럼 지금 내가 좀 바쁘니깐 알아서 있어

알았어

친구는 바쁘게 제작하고 있는 날 계속 지켜봤다

운선아 니가 최고 인거 같다

쓸데없는 소리말고 신경쓰이니깐 나가있어

알았어

 

바쁜일이 끝나고 공방을 경기도 양평에서 홍천으로 이전 하였는데 친구랑 같이 이사를 하였다

이사를 하고 공방을 꾸미는 데에 친구는 많이 도와주었다

어느정도 작업실이 꾸며지고 잠잘 방이 꾸며지고

제작을 할 수 있게 되자 

난 내 일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친구를 가르키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친구는 가지고 있는 실력을 발휘했다

 

기타가 완성이 되었는데 험 없이 제법 멋지게 나왔다

 

수리기술과 소리를 다루는 법은 시간 되는 대로 가르켜 줄테니 이제 나가라

어어?

친구는 당황을 하였지만 무시하고 내보냈다

작성한 제작노트를 보며 도움 받지 않고 하다보면 잠재되어 있는 실력도 나올 것이다

 

.

.

.

2년 후 현재 친구는 멋진 악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주문도 밀려 있는 상황이며 그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공방에 불이나 망할뻔 하다

파주에서 용인으로 이사와 어느정도 자리를 잡을 무렵이였다

강아지도 한마리 키우고 있었고 주문도 꾸준히 들어와 매일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겨울 어느날 파주에 갔다 올 일이 있어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나섰다

 

공방의 겨울은 항상 온도와 습도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기때문에 난방기구나 습도기구 관리를 잘 해야 됩니다

 

파주에서 일을 보고 저녁무렵에 공방에 도착 하였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히 나올 때 형광등을 키고 나왔기 때문에 창문이 환하여야 되는데 불빛이 보이질 않았다

어 이상하네

문을 여는 순간 놀라 자빠질 뻔 했다

검은 연기가 확하고 밖으로 나왔고 공방안은 온통 새까맣게 되어 암흑이 되어 있었고 

공방안의 모든것이 새까맣게 그을리고 타고 

겨울이라 습도관리한다고 열봉을 물에 넣고 끓여서 사용한게 화근

나갈때 충분히 물을 담아 놓고 나갔어야 됬는데 물이 충분치 않아서 열봉이 열을 계속 받다가 불이 나버린것

창문을 다 닫은 상태여서 안에 불이 나다가 산소가 부족해서 꺼져버린것 같았다 창문을 조금이라도 열어 놨다면 다 타서 재가 되었을 판이다 월세로 들어온 곳이라 다 타버렸다면 재기 불능이 되었을 수도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한 순간이었던거 같다

공방안의 모든것이 타고 그을려서 조금만 손을 대면 손이 까맣게 변했다

자재 공구 의자 옷 주방 욕실 모든것이 

 

이사태를 어떻게 해야하나

잠을 자는 방도 그을려서 옷이며 머 하나 건질수 있는게 없어서 잘 수도 없는 상황

눈 앞이 깜깜했다

 

정신차리자 

먼저 창문을 전부열어 환기를 시켰는데 겨울이라 너무 추었지만 머든 해야만 했다

일단 전기가 나간 부분부터 손을 보고 형광등을 닦아서 다시 끼우고 화목난로에 불을 폈다 

다행이 자재있는 쪽하고 불이 난쪽은 거리가 있어서 조금 그을렸을뿐 타진 않았는데 자동대패로 밀어보니 괜찮았다

모든 자재는 일단 밖으로 빼고 비닐을 덮어 놓고 

옷은 그을음이 다 안착이 되어 세탁을 해도 안될 거 같아 버리고 이불도 버리고 주방의 것들은 퐁퐁으로 닦으니 사용할만 하여 다시 사용하고 공구들도 닦고 바닥이며 창문도 닦고 또 닦고 닦고

그을음이라 닦고 닦아도 쉽게 빠지지가 않았다 

밤새 자재를 옮기고 닦다보니 날이 새니 나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담날 자재는 창고가 큰 아는 공방에 잠시 맡겨두기로 하고 주변 가까운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여 그을음 제거하는 데 쉽지은 않았다

이틀정도 하니 냄새와 그을음이 어느정도 제거가 되었는데 벽은 어쩔수 없이 다시 도배를 하였다

도배를 새로 하니 그을음 냄새가 많이 없어지고 일주일정도 지나자 다시 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일이 있은후로 가습을 하기 위해 열봉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가습 하기 위해서 열봉(일명 돼지꼬리) 사용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나의 취미와 생각들

 

어려서 부터 지금까지 나의 유일한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건 낚시다

나의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처음 들어갈 때 부터는 나는데 그 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 때 난 어머니와 둘이 살았고 어머니는 독일회사에 다니셔서 그 회사에 있는 기숙사 301호에 살았다

아버지는 그 당시 신학대학에 다니시며 대학 근처에서 생활을 하고 계셨고 가끔 한번씩 오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와 살았던 기숙사는 복도와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었고 베란다가 커서 난 자주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 보곤 했다

아침에 가끔 참새새끼가 베란다에 떨어져 있을때면 가지고 놀다가 날려 보내기도 하고 날다가 떨어지면 내려가서 주어 산에가 풀어주기도 하였다

기숙사에는 친구가 없어서 주로 기숙사 근처에 있는 작은 호수에 가서 아저씨들 낚시하는 걸 구경하는게 일 이였는데 비오는날 빼고는 거의 매일 구경하러 갔었다

물이 맑고 고기가 많아서 물속을 보고 있으면 작은 고기들이 왔다 갔다 하는게 보이고 손으로 몇 번 잡아볼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하기 일 수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 아저씨들이 고기를 잡는 것을 부러워 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낚시를 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낚시대를 만들어 고기를 잡으리라 

나의 작은 머리로 생각한 것은 오핀을 구부려 하얀실에 매달아 나뭇가지를 끝에 묶어서 낚시를 하는 거였고 그렇게 처음 낚시대를 만들어 흥분된 마음으로 호수가에 갔다

낚시를 하는 꾼이라면 멋진 낚시대와 맛있는 먹이를 준비하여 낚시터로 향할때 흥분되는 마음을 알 것이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고기를 잡을 생각에 내가 걷고 있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곳은 물이 맑고 물고기가 다 보이는 곳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던져서 낚시를 하면 어쩌다 잡혔는데 그 기분은 ^^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아저씨들 처럼 낚시대를 가지는게 꿈이 되어버렸다 

4학년이 되어서 100원짜리 조립낚시를 구입해 그걸 대나무에 달아 낚시를 하면 짜릿한 손맛과 많이 잡을 수가 있었고 아마도 어릴때 많이들 하였을거라 생각이 든다

 

생일이 빨라서 7살에 초등학교를 들어갔는데 나의 낚시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

 

낚시를 오랬동안 하다보면 꾼들은 나름대로 낚시의 철학이 있다

나의 낚시 철학이라고 하면 

낚시는 "자연과 대화하는 행위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호수에 앉아서 낚시를 하고 있으면 자연을 느낄 수가 있다 

낮에 부드러운 바람이 나의 뺨을 스치고 가면 기분이 너무도 좋아 자연스레 미소가 생긴다 

호수는 주로 산을 끼고 있어서 풀벌레 새...등이 많고 여러가지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딧치는 소리와 함께 어떤때는 오케스트라 협연처럼 멋진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자연의 음악

밤에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낚시를 하면서 반짝이는 수 많은 별들을 한 없이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별들의 움직임 별똥별 넓은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 

넓은 우주에서 보면 별들은 지구의 사람 이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된 다

지구를 우주로 생각하면 사람은 별

그 어떤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별들도 똑 같은 별이 없는 것처럼

 

밤이 지나 아침이 오기 시작 할 때 물안개가 피기 시작하고 그 아름다운 풍경은 표현하기가 힘들다

 

해가 뜰때면 물안개는 사라지고 산 너머로 뜨는 햇살이 나를 비추면 밤에 잘 지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람마다 느끼는바가 다르겠지만 난 그렇게 느낀다

 

요즘에는 차와 네비 폰이 있어서 대부분 미리 검색해보고 가는데 오래전 그런게 없을때가 더 좋았던거 같다

지도를 보면서 저 곳을 넘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을거 같은 느낌에 가곤 했는데 ...

 

자전거에 낚시가방을 싣고 등에는 기타를 둘러메고 다녔던 기억을 생각해보면 그 때의 그 시절 시대와 젊음이 그립기도 하다

기타 소리의 연구

 

기타제작에 있어서 마지막은 제작가가 추구하는 소리를 얼마나 완성도 높게 만들어 내는 것 일거라 생각한다

목공과 칠은 타고난 손재주가 있으면 많은 세월이 지나지 않아도 멋지게 뽑아 낼 수 있지만 소리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바탕이 없기 때문에 명기들의 카피를 통해 배워가지만 하다보면 한계점에 다다른다

왜냐면 언제까지나 카피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기급들의 악기를 보면 외관이며 소리며 그들만의 개성이 있다

카피를 통해서 그 소리를 똑같이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기를 쓰고 해도 그 소리를 똑 같이 만들기는 쉽지 않다

또 한 그 소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결국 카피에 불과하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짝퉁처럼

자기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평생가도 원하는 소리를 못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어제는 일 때문에 파주에 이성관선생님 공방과 나를 가르키신 선생님 공방에 방문을 하였는데 이성관선생님은 인기가 좋아서 잠깐 있는데에도 기타를 사러 몇 분이 방문을 하였다

내가 아는 애호가분도 이성관선생님의 50호를 가지고 있는데 나에게 그 악기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생님 이성관선생님의 50호 소리정말 좋아요'

'아 그래요?'

'네 50호에서는 정말 끝장판인 거 같아요'

'정말 그렇게 좋아요?'

'네 말도 안되게 좋아요'

'소리연구를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보급형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이성관 선생님의 50호는 가격이 저렴해서 많이 주문이 있고 그 만큼 많이 제작을 하기 때문에 수 많은 반복속에서 최상의 소리를 찾지 않았나 싶다

그 위의 기타도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성관선생님공방에서 일을 보고 선생님 공방에 방문을 하였다

선생님은 지금 제작하고 계시는 악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중 중요한걸 알게 되셨다고 하였다

선생님 그게 먼데요 궁금해요

이건 안되지

네?

내 자식한테도 이건 못 가르켜 주지

아마도 내가 죽을때 숨 넘어 가기전에 말 해줄수도 있을지 모르지

네??

선생님 드시고 싶으신거 있으세요?

그래도 이건 안되

나도 먹고 살아야지

선생님은 소리에 많은 작용과 영향을 미치는 상하현주와 브릿지의 연구를 최소 20년 이상을 하셨고

지금은 평생의 노력끝에 큰 비밀을 얻으신 거 같았다

그건 바로 * 속에 있는데 그냥 * 을 하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먼가를 하신다

궁금하여 계속 물어봤지만 이것만은 절대 안되라고 하셔서 그만 물어 볼려다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끝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소리를 의도적으로 어떠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

첫번째는 나무를 이해하는 것

두번째는 칠이 소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적절하게 적용 하는 것

기타에서 어느 한부분이라도 소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곳이 없다

전판 측후판 네크 지판 브릿지등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오랜 기타의 역사속에서 실력있는 수많은 제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하였을까

수 많은 연구속에서 좋은 연주를 위해서 악기가 가져야 하는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많은 것을 밝혀 낸 거 같다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는데 기본적으로 수학공식처럼 소리도 공식 같은게 있다

이것을 알면 내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에 좀 더 근접하게 갈 수가 있다

어느정도 왔으면 그 소리를 다듬고 다듬어 최상의 정점에 올리는 것

최상의 소리를 가지고 있는 악기를 만들어 내는 것

신은 모든 인간에게 각자 재능을 주었다

인간은 그것을 알고 평생을 바쳐 노력한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삶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고민을 하게 된 하루

 

어제 전화가 왔다

나의 이름을 카페나 프로필에서 다 지우게

그분은 나에게 제작법과 수리등을 가르키신 분이시고 지금 내가 제작을 하고 있는 것도 다 그분 덕이다

누가 머라고 하던 그분은 나의 스승이다 설령 그분이 그 걸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을 부인 할 수 없다

사실을 지운다고 해서 지워 지는 것이라면 세상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전화를 받고 마음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분에게 혹 피해를 준 것이 있나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이 잘못 된 것인가

난 단지 그 분의 기타제작의 열정을 존경하고 그 것을 글에 담았을 뿐인데

내가 쓴 글을 다시 읽고 또 읽어 보았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데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고 객관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주관적으로는 잘못된 것이다 라고 생각 할 수 있으니깐 이 글을 쓰고있는 나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할 것 같다

.

.

많은 고민 끝에 그분께서 원하시는 데로 지우는게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 내용중에 "내 허락없이 자네 카페에서 내 이름을 쓰는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본인의 이름이 내가 모르는 사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 불쾌하셨나 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예전에 선생님과의 만남이라든지 다른 글 들을 보셨을 때는 보시고 않 좋은 이야기를 하신적이 없으셨는데 ..

며칠 전 선물을 준비해 방문 하였을때도 따뜻하게 반기시고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제작에 대해 선생님께서 노력한 부분을 일정부분 말씀 하신 것을 내가 글을 썻기 때문인가

다시 글을 읽어 봐도 기분상할 내용은 없는데

어쨌든 괞히 글을 써서 이런일이 발생한게 후회된다 앞으로는 실명을 쓰는 것은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좋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조심히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선생님은 나를 제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데 스승이라고 하고 제자라고 하니깐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든다

8년전쯤인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 물은적이 있다

선생님 누가 그러던데 이운선은 내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셨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말이예요?

전 선생님 제자가 아니었나요?

어 난 제자 없어

제자라고 생각해 본 사람이 없어

저는 선생님에게 배워서 이렇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럼 전 누구한테 배웠어요?

(근본을 거스르는 말씀같아서 난 반문하였다)

그렇게 따지면 나한테 배운사람 수십명은 되

너도 그중에 한 사람일 뿐이고

전 이해 하기가 힘듭니다

그분들도 선생님에게 배웠다면 다 제자 아닌가요?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단 한명의 제자도 없네

그럼 프로필에서 선생님 이름을 지워야 하나요?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 어쨌든 난 제자 없네

제자가 아니라고 하는데 나만 프로필에 올리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게 아닌가

주변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할 것이고

선생님은 피해가 없겠지만 나에겐 이미지 타격이 있을 것은 분명한 일

그 때 난 내가 무엇을 잘못 했는지 몰랐고 본의 아니게 선생님에게 누를 끼쳤나도 몇날 며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십수년 동안 프로필에 올라가 계신분이고 선생님도 다 알고 계신 상태인데 지금에 와서 지우라니 아무리 기분이 상하셨다고 하더라도 너무한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글이나 프로필에 계시지 않더라도 난 주변분들에게 훌륭하신 국내 최고의 제작가중의 한 분 이시고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제작 열정을 가지신 분이라고 또한 난 그분 덕 분에 그분께서 알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작가로 활동하며 존재하고 있다고 말을 할 것이다

 

 

 

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있습니다

작업실 안에서 밖을 내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오늘은 산중턱에 구름이 걸쳐져 있어

한 동안 바라보며 '멋지군'이란 단어가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되는 날이네요

바로 앞은 자작나무들이 무리지어 있어 항상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오늘 같이 촉촉히 비가오는 날에는

풍경과 분위기 만으로도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겸허해지기도 합니다

작업실 안에서는 땀을 흘리며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제자가 있는데 곧 완성이 다가오는 첫 작품과 그의 모습이 하나가 되어 또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이 것 또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 오네요

.

.

겸손과 발전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내던 제작가 선배님이 있습니다

나 보다는 제작경력이며 나이며 한참 많은 제작가로써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제작가 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 부터 10여년 전 후 즈음에는 내 악기보다 다른 분의 악기와 칠을 많이 했던 시절

그 때는 정작 내 악기 보다는 국내 제작가분들의 하청을 받아 그 분들의 고급 사양의 악기와 칠 그리고 수리등을 많이 하였던 때 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전화 한통이 왔다

이선생 난 어디서 있는 ㅇㅇ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찾아 뵙고 먼저 인사 드렸어야 됬는데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셀락칠을 의뢰 하고싶은데 한대당 얼마씩 하나요?

네 현재 제작가 분들에게는 얼마씩 받고 있습니다

아 그럼 이번에 두대만 해 줄 수 있어요?

네 보내 보세요

난 해왔던 데로 칠을 하여 보내었는데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이선생 얼마전에 칠한 악기가 전판이 금이 갔는데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의뢰한 입장에서는 이럴때 난감하다

왜냐면 바로 나가야 될 악기이고 칠 값을 지불 하였는데 다시 또 의뢰를 해야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레탄이나 락카는 나무를 많이 잡아주기 때문에 악기의 내구성에 있어 좋은 편이지만 셀락은 악기를 제작 할 때 문제가 될 부분에서 보완을 하고 제작을 하지 않으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네 선생님 그 부분은 잘 갈라지는 부분인데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요?

사실 갈라진 부분을 말끔히 할려면 수리를 하고 칠을 벗겨내고 다시 칠을 해야 되는 상황이니 나에게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이 되고나니 이래선 서로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 분은 자존심을 굽히고 여러가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난 그럴 때 마다 그 분의 겸손함에 더 고개를 숙이며 네 선생님 이런 부분은 제작을 할 때 이렇게 하시면 갈라짐과 내구성에 도움이 됩니다라고 하면

그 분은 그럴 때 마다 고맙다고 하였다

단지 난 그 선생님보다 수리를 많이 하다보니 내구성이 중요하는 걸 알게 되었고 제작 할 때 많이 하자되는 부분에서는 어떻게 하면 그 부분을 보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난 이렇게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선후배가 있고 항상 1등이 있으면 중간도 있고 하위도 있다 선배라고 해서 다 알 수 없고 후배라고 해서 선배보다 다 모를 수는 없는 법이다

후배가 조금 더 안다고 해서 선배의 위치가 흔들리거나 작아지지는 않는 법이다

난 그 선생님과 지금도 관계를 돈독하게 지내고 있으며 제작에 관해 내가 부족한 부분은 그 분에게 물어보고 그 분도 자기가 부족한 부분은 나에게 물어 보곤 한다

그 선생님의 겸손함은 나에게는 항상 존경심으로 다가오며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든다

그 분과의 관계가 10년이 지난 지금 그 선생님 악기는 내구성이 좋은 악기를 제작하고 있으며 여러가지로 악기가 좋아져 인기가 많다

현재 그 선생님의 악기는 불경기 인데도 불구하고 항상 주문이 밀려 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게 아니라 자기를 더 높이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을

교만은 자기를 높이는 게 아니라 자기를 낮아지게 하고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라는 것을

추적추적 부슬비가 내리는 날에 적어 봅니다

 

 

오늘 밤에는 하늘의 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릴시적 여름밤 외가집에 살 때 시골 마루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때의 느낌

그때에는 밤하늘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그 선명하고 초롱초롱한 별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걸 느끼며 별똥별이 간간히 떨어질때 특별한 생각없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냥 마냥 바라보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나이가 들면 추억으로 산다고 했던가?

나이가 들어가니 그때의 모습들이 추억으로 다가 오는 거 같다

누구나 다 아는 밤하늘을 보면 보이는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북극성등

오늘 한동안 밤하늘을 보며 어릴때 그 느낌을 생각도하고 지금의 나이가 들어 바라보는 느낌과 생각들

우리가 바라보는 별들은 어릴때와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어릴때와 나이들어 바라보는 시각은 사뭇 다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나 또한도 그때의 시절은 마냥 그냥 바라보고 좋은 순수 그 자체 였던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이 아닌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니 인생은 어떻게 살고 있냐에 따라서 많이 변하는 거 같다

"자연스러운"

자연스러운이란 글자에 진리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드니 글로나마 표현 할 수 있는 거 같다

만약 이 진리를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직 그 마음에 순수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주관적인 복잡한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깨닫는 순간 순수라는 단어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순수하다 라는 것은 자연스러운과 동질감이 있으니깐

물론 악한자가 자연스럽게 악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것은 열외다

혹 그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거 같아서 말이다

사회가 강팍 해 질 수록 순수함을 잃어 가는 것

내가 삶을 강팍하게 살아 갈 때 나의 순수함은 멀어지는 것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 강팍 해 질 수 밖에 없어서 순수함을 잃어가며 살아 가는 것

나의 삶은 강팍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나의 삶에 순수라는 것이 존재한가

인생을 되집어 볼 만 하다

누구나 주어진 시간속에 삶을 살아가는 데 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

.

.

.

.

.

.

.

기타의 소리에도 그와 같은 동질감이 있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이런 생각들은 정도에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자각하며 생각한다

정도에 넘어서면 사이코란 오명을 쓰게되는 내가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정도에 넘어서지 않을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나만의 생각이니 객관적으로 보았을때 나의 생각과 다른이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다

주제는 자연스러운 인데 이제 이것을 기타의 소리와 접목시켜 이야기 해 볼까 한다

수년전 플레이기타에서 4천만원 짜리를 연주해 본적이 있다

그 곳 주인장이 선뜻 선보이며 소리를 들어보라고 주었는데 연주해 보기전 선입견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4천만원이란 금액에 대한 것

명기 제작가 

이미 보지 않고 들어보지 않아도 대단한 악기라고 생각에 사로잡혀서 볼 수 밖에 없다

특별함이 있는 선입견에서 보는 시각

그런데 정작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데 기대를 너무 했던 것일까?

외관은 너무도 보통수준의 실력으로 제작되었고 소리는 너무도 평범했다

무언가 특별함을 기대하였지만 그런것은 없었다

그냥 "클래식기타 다운 소리"였다

기대와 어긋나은 표정을 지을때 그 주인장은 다른 고가의 악기 몇 대를 연주 해보라고 주었다

그 때 난 벼락을 맞은 듣한 나의 뇌에 충격을 받았다

그 것은 자연스러운 소리로 들리지 않고 무언가 소리에 기교를 부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 이것이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나의 소리의 기준이 자리잡히기 시작했다

무언가 특별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 고뇌하였던게 소리의 기교를 만들기 위해 고뇌하고 있었던 것인가?

.

.

.

그 후 지금까지

이질적이지 않은 기타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관의 작품성과 내구성은 기본이다 그 다음 소리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소리는 주관적이라고는 하나 자연스럽게 파고들때 그 누구도 이질감 없이 연주를 소화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제작에 임하고 있다

나는 특별한 소리를 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은 연주가나 제작가나 한번 심도있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글로 남겨 보았습니다

머릿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많고 더 글로 남길 수도 있지만 

앞으로 또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고뇌와 즐거움도 있을 것이고 생각도 바뀌게 되겠죠 

훗날을 기약하며 글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이운선